30년 데뷔…"남한강의 파수꾼" 역할|박재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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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 충청도 하늘은 엷은 비구름에 젖어 /나직이 가라앉아 있는데/나무나무 연연 색 새순 피어 펼쳐진/멀고 가까운 그 산과 들. /내가 캐나다 이민을 포기한 뜻도 /바로 이러한 강산을 못 잊어 했기 때문. /차창에 기대앉은 어느 중년여인의/다소곳한 옆모습/무릎의 체온을 /아무 죄 스럼 아닌 같은 땅 곡식을 먹고사는 정으로 느끼면서 /나는 나대로 지금은 아득하기 만한 /지내 온 날들을 되새겨 보았다.』(「백마 령을 넘으며」중)
1930년『조선지 광』에 작품 발표를 시작으로 시단 한평생을 살아온 박재륜씨(80). 중원군 가금 면 남한강가의 마을에서 태어난 박씨는 30년대 김기림·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발표하며 우리의 현대시사 초창기를 담당했던 최 원로시인중 한 사람이다.
『김광균 오장환 장만영 김기림 이 상 정지용 유치환 조경희씨 등과 어울러 문학 이야기도하고 술도 마시며 잘도 놀았지요. 그러나 일찍이 간 사람도 있고 북으로 올라간 친구도 있고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많은 친구들 중 지금은 서울에 가 봐야 김광균 김규동씨를 만 나는 것이 고작이니 참 허전해요. 남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여울져 흐르는데.』
박씨는 초창기 조형성과 지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으면서도 인생의 덧없음, 흘러가는 것의 바라보기 등 무상이나 흐름의 정조를 띠고 있다. 이는 아마 그가 남한강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이 솟았으니/한결같이 서쪽 따라 흐르는 강줄기/이제 그 숱하던 하루해 또 기울어/저녁노을 찬란하게 비낀 하늘/내 어릴 적 노닐던 물 기슭/그 물 기슭을 서성이다 /바라던 고운 사람도/나의 뜻을 안겨 보던 그들도 /이내 다 가 버렸고/우리 또한 떠나면 그만인 것을 /강은, 흐름은/왜 이리도 술렁이는 것일까.』(「강상음」중)
50년부터 충주에 자리잡고 교편생활을 하며 충북문단을 개척한 박씨는 충북문학의 살아 있는 상징이자 남한강의 파수꾼이다.『원로는 무슨 놈의 원로, 그런 값을 했어야 원로지』라며 겸양을 감추지 못하는 박씨는 충주에 살다 보니 아무리 주지적인 시를 쓰려 해도 산하의 아름다움이 저절로 시에 와서 박힌다고 한다. 80고령에도 베레모에 파이프를 물고 충북문학 현장마다 빠지지 않는 박씨는 충북문인들의 자부심 그 자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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