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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단풍강산 남 모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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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가을 가뭄 때문에 올해 단풍은 예년에 비해 화사하지 않을 것이라 걱정하는 산행객이 많다. 그래서 전국의 국립공원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예년의 단풍이 100점이라 할 때 올해는 몇 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인터뷰 결과 설악산과 지리산은 오히려 예년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산 높고 골 깊은 탓에 웬만한 가뭄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지리산의 경우 비교적 강수량이 일정했기 때문이란다. 정상부에서 시작된 단풍은 습도가 높은 계곡 아래로 번져가면서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절정기인 20일 이후 산행에선 정상을 목표로 삼아 오르기보다 계곡을 잇는 코스를 잡는 것이 현명하다. 설악산과 지리산에서 수십년 째 머물러온 산장지기들에게 단풍 좋은 코스를 추천받았다.

한형석 한국산서회 회원
사진=중앙포토

*** 설악산

◆ 수렴동 이영진씨

백담사~영시암~오세암
쉬엄쉬엄 즐기며 걸어야 제맛

"허허. 거기는 많이 알려지면 안 되는데…." 수렴동 산장지기 이영진(36)씨가 추천한 코스는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거쳐 오세암 이르는 길이다. 영진씨는 이 시대 마지막의 산악인 출신 산장지기로 알려져 있다. 산장 설립자 이경수씨의 막내아들로서 영시암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수렴동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주로 봉정암이나 대청봉을 목표로 산을 오르죠. 그래서 영시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은 비교적 한적합니다. 화려하지만 넘치지 않고, 절경은 아니지만 선경(仙境)이라고 할까요. 매일 가도 질리지 않고 감칠맛이 있어요. 가을에 걸으면서 사색하기에는 그만인 곳이죠." 그는 평소 산장을 지키며 사색과 명상을 즐긴다. "가을에는 목표를 잡고 힘써 오르기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천천히 사색하며 걷다가 되돌아가는 방법도 괜찮다"고 했다.

기점인 용대리부터 백담사까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편도요금 2000원)를 운행한다. 백담사부터 오세암까지 왕복 산행시간은 총 7시간 정도. 중간에 영시암에 들러 식수를 해결할 수 있다.

수렴동 산장 033-462-2576.

◆ 권금성 유창서씨

설악동~비선대~양폭
천불동 돌단풍을 아시나요

"설악산 단풍은 어디서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의 국립공원 산장지기 중 1세대라 할 만한 '털보' 유창서(68)씨. 1971년 겨울에 설악에 자리 잡은 뒤 줄곧 전망대 구실을 하는 권금성 산장을 지키고 있다. 그가 추천하는 코스는 뜻밖에도 가장 인파가 붐비는 천불동 코스다. 설악동에서 비선대를 거쳐 양폭 산장까지 이어지는 평범한 코스. "대부분의 단풍객들은 컴컴한 새벽에 오색을 출발해 대청봉을 거쳐 천불동으로 내려오지요. 하지만 하산 때쯤에는 해가 져 제대로 된 천불동 단풍을 볼 수 없어요. 천불동 돌단풍은 아침햇살과 함께 보아야 제 맛입니다. 절벽 사이에서 자란 돌단풍은 바라보면 생각할수록 신기하지요." 유씨는 "해 뜰 무렵 산행을 시작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햇살에 비친 단풍을 실컷 즐기다 하산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산 전체를 다니기보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제대로 된 단풍 하나를 보는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이다.

왕복 산행에 8시간 소요. 등산로 중간 중간에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수없이 많다. 식수는 비선대와 양폭 산장에서 구한다.

권금성 산장 033-631-8067.

*** 지리산

◆ 피아골 함태식씨

화엄사~노고단~임걸령~피아골
고도 따라 단풍 종류 달라져

함태식(78)옹은 1972년에 지리산에 입산해 노고단 산장에서 16년, 피아골 산장에서 현재까지 19년 동안 살아왔다.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가을 지리산에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해. 수십 명이 떼로 몰려와 떠들다 가면 제대로 된 단풍을 즐길 수 없지." 그는 지리산에 살면서 35해 단풍을 맞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단풍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참 생각을 한 뒤 그가 추천한 코스는 화엄사에서 시작해 코재를 거쳐 노고단에 오른 뒤 반야봉을 바라보면서 산행을 하다 피아골로 내려서는 코스다. 활엽수와 단풍나무가 많아 산행 내내 고도 변화에 따른 각기 다른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코스의 백미는 피아골 산장이다. 산행을 마치고 피아골 산장에서 1박을 한 다음,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산장 주변의 단풍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이 코스는 아기자기한 계곡미가 일품인 삼홍소를 지나 직전 마을로 하산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화엄사에서 피아골 산장까지 8시간이 소요된다. 식수는 노고단과 임걸령에서 구한다.

피아골 산장 061-783-1928.

◆ 뱀사골 송영호씨

만복대~고리봉~노고단~반야봉~삼도봉~뱀사골
단풍과 억새를 동시에

지리산 장터목 산장에서 3년을 지내고 10여 년 간 뱀사골 산장을 지킨 송영호(49) 대장의 추천코스는 얘기만 들어도 허벅지가 뻐근해진다. "만복대에서 반야봉을 보고 걸어내려오면서 단풍을 감상하는 거죠. 만복대 쪽은 억새밭이기 때문에 예쁜 단풍과 운치 있는 억새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고, 조망이 좋아 반야봉을 포함한 지리산 전체의 단풍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토끼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백미란다.

"보통 새벽같이 와 반야봉만 오르고 내려가는데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해 있을 때 산행을 시작해 내내 단풍을 감상하다 낙조를 바라보고 1박을 한 다음 아침 일찍 일출까지 보는 것이 제 맛이지요."

특히 올해 뱀사골 단풍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줄 것이라고 송대장은 말했다. "등산로가 순탄하기 때문에 마음 맞는 사람 한두 명과 같이 오면 좋아요. 연인이나 부부들에게 가장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그가 추천해준 만복대~뱀사골 코스는 산행시점인 정령치부터 뱀사골 산장까지 총 8시간 정도가 걸린다. 중간에 노고단과 임걸령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뱀사골 산장 063-626-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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