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사의여행스케치] 스페인 - 인간 성 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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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바르셀로나 메르세 축제 기간의 일요일. 카스텔스(인간 城 쌓기.사진)행사를 구경하러 방을 나섰다. 전날 내린 비로 도시는 아직 촉촉히 젖어 있었다. 시청 앞 광장엔 막 개어가는 하늘 아래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 축제들이 늘 그렇듯, 정오부터 시작한다던 행사는 옆에 꼭 붙어 선 아저씨의 땀 냄새가 익숙해질 무렵인 한 시쯤이 돼서야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먼저 바르셀로나 팀이 시청 건물 앞에서 탑을 쌓고 그 꼭대기에 올라선 꼬마아이를 시청 발코니에서 들어올리는 것으로 축제는 시작된다. 팀별로 돌아가며 각자 연습했던 탑을 쌓는데 보통 성이 4층 정도에 이르면 악단은 비장한 음악을 연주하고 구경꾼들은 숨을 죽인다. 한 층, 또 한 층, 마지막으로 대여섯살이나 될까말까한 두 꼬마가 꼭대기 장식을 위해 성을 오르기 시작하면 모두들 초긴장 상태가 된다.

'저 가냘프고 예쁘고 귀엽고 조카 같고 조금 겁에 질린 꼬마아이가 꼭 성공하길…'.

긴장 섞인 정적이 흐른 뒤의 성공, 그리고 군중의 환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몰 베!'를 외쳐댄다. '몰 베(Molt be)'는 '매우 좋아' '잘했어'라는 뜻의 카탈루냐어다.

'인간 城 쌓기'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200년 역사를 가진 전통 행사다. 바르셀로나에서 한 시간 정도 남쪽에 있는 발스라는 동네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성 건축가들이 처음 고안했다. 그 인근 타라고나에서는 2년에 한 번 경진대회도 열린다. 보통 건장한 남자들이 기초를 만들고 그 위로 가벼운 사람들이 층을 이어가 대략 7,8층의 성을 쌓는다. 이 인간 건축의 하이라이트는 대여섯 살 되는 작은 아이가 우뚝 솟은 인간 성을 아슬아슬 기어올라 꼭대기에 오른 뒤 한 손을 치켜드는 순간이다. 무게를 견뎌내며 균형 잡기가 보기보다 쉽지 않아 인간 골조가 무너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치기도 한다.

성 쌓기 행사는 카탈루냐의 몇몇 소도시와 바르셀로나에서 8~11월 여러 차례 열린다. 8월 말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축제 때 그라시아 지구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나, 9월 말 메르세 축제에 맞춰 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행사가 구경하기 편하다. www.castellersdebarcelona.org에 들어가면 언제 어디서 행사가 열리는지 알 수 있다.

오영욱 일러스트레이터.건축가



오기사는

이번 주부터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인 오영욱(30)씨의 여행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오 기사'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오씨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졸업 뒤 대림산업에서 3년 간 건축기사로 일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2003년 돌연 사표를 던지고 15개월간 15개국을 여행했으며,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체류 중입니다.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샘터, 2005), '오 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예담, 2006)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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