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뒤끝 도진 「계파병」/장외로 야 내보낸 「요즘 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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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ㆍ공화계 YS에 「흠집내기」/대 야 통로 막혀 “세월이 약” 방관
야권이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는데도 민자당지도부는 의외로 무덤덤하고 특별한 대응책은커녕 대책회의조차 열지 않고 있다.
김윤환정무장관이 총리수행 출국을 연기해가며 며칠간 평민당측과 막후접촉을 했지만 원론적 감의 교환이 있었을 뿐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당내 일각에서는 날치기 통과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의식,김영삼대표가 이끄는 지도부의 저돌성과 안이한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은근히 불만의 공감대를 넓혀가려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평민당이 취할 강경투쟁의 내용과 강도에 따라 여러가지 정치적 변조를 가져올 수도 있어 하한정국의 긴장요인이 되고있다.
○…민자당이 일단 관망자세로 있는 것은 평민당과의 협상을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며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기본판단에다 변칙통과를 주도한 민주계와 평민당간에 워낙 감정이 악화되어 있기 때문.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18일 국회의원ㆍ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야당문제는 조급할 필요없다』며 『오늘 내일 당장 협상하기 보다 집권당으로서 당당히 나갈 때 시간이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말은 평민당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대표 특유의 자신감이기도 하고 그가 항용 정치적 벽에 부닥쳤을 때 일단 뻗대보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평민당과의 공식대화채널은 거의 차단되어 있으며 김정무장관이 김대중 평민당총재 측근들과 접촉을 가졌으나 평민당이 지나치게 스스로의 발목을 묶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거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평민당의 전당대회가 끝난 이후에나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민자당이 절충할 수 있는 것이 지자제ㆍ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 정도여서 자칫 정기국회까지 경색정국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평민당은 이미 지자제가 약속한 대로 지켜지지 않는 한 어떤 대화도 거부한다는 원칙을 정해 사실상 전기를 마련하기가 어렵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민당과의 대화는 평민당이 장외집회와 전당대회등 「굿풀이」를 통해 국민여론을 얼마나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난 다음 실마리를 찾겠다는 입장이다.
○…여야대화가 이처럼 막혀 있는 가운데 민자당내부에는 고질적 계파갈등과 김영삼대표체제에 대한 민정ㆍ공화계의 멍들이기 작전이 서서히 나타나는 조짐을 보여 주목.
김대표에게 일거에 타격을 주려는 펀치라기보다는 기회있을 때마다 날리는 잽성에 가깝다.
18일 의원ㆍ지구당위원장회의에서 민정ㆍ공화계가 제기한 불만은 『양보할 만큼 다 하고,이런 상황을 만든 데 대해 당지도부는 책임지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점.
김중위(민정) 유기수(공화) 두 의원은 『당내 의견 수렴절차도 없이 이런 식의 원내전략을 밀고 나가서는 배지를 달고다니기 창피하다』고 주장했다. 또 쟁점법안들을 모두 반드시 이번에 통과시켜야 했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일부 의원의 공개적 불만제기는 단순한 개인의견이 아니어서 문제된다.
김종위의원의 경우 지난 16일 민정계 중진인 박종찬ㆍ이춘구ㆍ이한동의원과 이춘구의원방에 모여 불만들을 수렴,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표에 대한 불만은 박용만의원등 민주계일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겉으로는 임시국회 법안처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통합이후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과두지배체제」에 대해 누적된 불만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적지않은 의원들이 그동안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 분풀이를 당3역 경질론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민주계는 대체로 여당화하지 못한 체질과 행동사이에 갈등을 느끼고 있다.
물론 민정계에는 3당 연립형식의 이질적 체제속에서 총리 사과 요구,개혁주장등 민주계의 주장에 대한 반발이 공감대를 갖고 있다. 다만 김대표가 힘으로 밀어붙여준 데 대해서는 속으로 여당으로의 변신과정으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비록 김대표의 밀어붙이기가 김대중 총재와의 대결이란 측면이 없지 않더라도 여당으로의 변신과 민자당이란 동질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정계의 한 중진은 『만약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임시국회가 끝났으면 「3당통합은 왜 했느냐」는 무능론을 제기했을 것 아니냐』며 『김대표는 이런 당내 여론을 수렴해 집행했을 뿐』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사실 다수 의원은 처리방식에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수긍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민주계는 노대통령까지도 다수결의 원칙을 강조하는 마당에 김대표의 인책을 거론하는 것은 당을 다시 쪼개자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일부 불만의원들은 대화분위기 조성을 이유로 당직개편을 제기하고 있지만 법안처리의 잘못을 시인하고 들어가는 당직개편은 있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3역의 경우 의석비보다 계파대표성이 있는 데다,힘의 안배란 점에서 계파간 호환성이 없다는 것도 난점이다.
19일부터 대부분의 의원이 지역구 활동에 들어갔고 하휴기중 절반가량의 의원이 외유를 떠날 것으로 보여 결국 책임론은 일과성이 될 가능성이 크며 결국 날치기의 후유증은 차기정권의 향방,동질화,당내 민주화라는 과제와 함께 민자당의 속성을 다시 드러낸 것으로 봐야한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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