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 정책」일관성 없어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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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구소통폐합으로 시련을 겪었던 정부출연 연구소를 비롯한 과학기술계가 겨우 후유증을 수습하고 연구분위기가 안정돼 가고 있으나 최근 정부가 국책연구사업을 각 부처로 분산하는 등의 과학기술정책을 수정하는 계획을 발표, 혼선을 빚고 있다.
이 기본계획은 상공부가 작성한 「과학기술지원 행정체제 개선 안」의 논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계획은 법에 명시된「종합과학기술심의 회」의 심의는커녕 대통령과학기술 자문위원회를 비롯한 과학기술계의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일부 실무자에 의해 졸속이 마련됐다는 과학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과기처가 주도해 온 국책연구개발사업을 국책연구개발과 산업관련 기술개발로 분리해 전자는 과기처가 계속 관장하며 후자는 관련산업부처가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연구비도 직접 지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기처가 집행하고 있는 국책연구비(금년도 약 9백억 원)의 일부를 떼 상공부 등이 직접 나눠주게 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출연연구소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연구분야의 중복, 연구협조체제결여 등의 부작용을 빚을 우려가 있다고 과학계는 보고 있다.
이 같은 체제개선은 현행출연연구소 집중관리 방식으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산업기술의 개발과 공급이 미흡하고 한정된 연구개발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도 문제가 많다는 데에서 당위성을 찾고 있다.
상공부 등은 지금의 경제난국 원인을 기업의 기술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결과적으로 국가연구개발을 주도해 온 과기처가 경제난국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부처간에 다툼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한편 과기처 측은 『82년부터 국책연구사업을 주도해 오면서 한국형 과학기술 모델을 정립하고 적은 돈으로 짧은 시간에 기술전진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어 파워게임에 밀린 꼴이 됐다.
과학계의 입장에서는 기술개발촉진법 등 각종 과학기술 지원체제를 마련하고 기업연구소의 설립 등 기업의 기술개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과기처와 출연연구소의 공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 이번 정부의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상공부는 82∼89년에 수행된 특정연구개발과제의 기업화 완료율은 15%에 불과하나 상공부의 공업기반 기술개발사업 기업화 율은 84.4%나 되며 기업부설연구소도 상공부의 공업기반기술 개발사업에 참여할 목적 때문에 급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과기처의 국책연구개발사업은 초기에는 기업화에 주목적을 두었으나 점차 기업의 기술개발 능력이 향상되면서 80년대 중반이후에는 기업이 하지 않거나 하기 힘든 핵심기술영역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술보호주의의 벽이 날로 높아가는 국제기술환경 속에서 이 같은 첨단핵심기술을 개발, 기업에 확산시키는 일을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하겠다.
출연연구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같은 핵심기술의 개발인데도 기업이나 대학과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출연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과기처는 정책조정을 위한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침묵만 지키지 말고 정부조직법 상「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종합적 기본정책의 수립·기획의 종합조정기관」으로서 제 임무를 이제부터라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정부부처간의 영역다툼으로 국가발전에 가장 중요한 과학기술정책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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