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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신탁제도 도입 “갈팡질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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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 법이냐… 기존제도 보완이냐… 미루는 속사정/현재도 은행융자 받아 개발 가능/소유권제한 겁내 실효 의문
토지신탁제도의 도입을 놓고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현실여건을 고려할때 이제도가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토지신탁제란 땅을 가지고 있으나 개발할 돈이 없거나 건축절차가 복잡해 놀리고 있는 땅을 전문기관에 개발을 의뢰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은 땅주인과 신탁기관이 계약에 따라 일정비율로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지난 4월13일 택지소유상한법ㆍ토지초과이득세법 등 토지공개념법의 시행으로 앞으로 나대지나 유휴지에 부담금이 부과됨에 따라 노는 땅의 개발을 촉진,토지이용도를 높인다는 취지에서 이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었다.
「4ㆍ13」조치때 같이 제시된 부동산등기의무화제도는 최근 임시국회에서 특별조치법이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토지신탁제는 현실적인 효과가 의문시됨에 따라 그후 3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토지개발신탁제도의 도입을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하는지 아니면 기존의 신탁업법을 보완해야 할지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토지신탁제 도입에 걸림돌은 무엇이며 일본의 경우 이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본다.
토지신탁제도는 땅주인이 소유권은 보장받으면서 신탁회사가 그땅에 상가ㆍ사무실ㆍ주택 등을 지어 생기는 이익을 나누어 갖는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는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굳이 신탁회사를 통하지 않고도 땅임자가 마음만 먹으면 자금을 융통해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제도의 필요성을 반감시키고 있다.
예컨대 1천평의 대지에 오피스텔을 짓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땅주인이 현재 건축자금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 은행에 이 땅을 담보로 잡히고 자금을 융자받아 공사에 착공한다. 그후 분양공고를 내 분양대금을 미리 받아 건물을 올릴 수 있다.
특히 이같은 과정은 땅주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시공회사에 부탁할 경우 큰 문제없이 대행해 주고 있다.
넓지않은 땅에 집을 짓고자 할때도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 되고 특히 다가구주택의 경우 건축비의 절반정도가 주택은행에서 자동융자되고 집을 완공한후 전세값을 받으면 은행융자금을 쉽게 갚을 수도 있다.
땅에 대한 국민들의 소유관도 신탁제의 성공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라고 건설부관계자는 말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지소유권은 온전한 것을 원하고 있으며,신탁회사에 맡긴 동안(최소한 10∼15년)은 이를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고 할때 신탁제도가 얼마나 활성화되겠느냐는 얘기다.
특히 땅에 대한 강한 소유의식은 부동산을 남에게 맡기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
현행 신탁업법(10조)은 금전 및 유가증권은 물론 토지에 대한 신탁(이경우 개발이나 처분이 아닌 관리만 부탁)도 허용하고 있으나 서울신탁은행의 경우 20여년간 관리신탁을 받은 부동산이 고작 17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는 또 계속된 투기억제책으로 부동산시장이 일단 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이용과 효과가 의문시되는 제도를 새로 만들어 부동산을 괜히 자극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갖고 있다.
건설부 관계자는 재무부와 이 제도의 필요성을 좀더 따져볼테지만 이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때 토지신탁제는 도입되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한다.
한편 일본은 이 제도를 지난 84년 3월 도입,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토지신탁시장이 매년 30%안팎씩 신장하고 있으며 지난 3월까지 6년동안 총수탁건수는 1천4백65건 1조1천7백억엔에 이르고 있다.
신탁전문회사를 따로 두지 않고 삼정ㆍ삼릉ㆍ주우 등 8개 은행에서 신탁업을 겸영하고 있다. 위탁형태로는 한사람이 개발을 의뢰하는 단독위탁이 80%쯤 되고 나머지는 2인 이상의 소유자가 공동으로 위탁한다.
신탁기간은 보통 10∼30년의 장기이고 토지에 사무실ㆍ호텔ㆍ음식점 등의 건물을 지어 임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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