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 여가 어떠해야 하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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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가와 여유는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지만 그 자체가 인간다운 삶을 창출해 주는 것은 아니다. 불행히도 문명발달로 소중하게 얻어진 여가가 비생산적이고 부도덕하게 오용되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게 된다.
여유가 자신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게 될때 그것을 얻기 위해 인류가 부단히 추구해온 노력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며칠새 지상에 보도된 일부 부유층 부녀자들의 비뚤어진 행태를 보면서 우리가 갖는 아쉬움이 바로 그런 것이다.
서울 영동 수입 옷가게의 단골 고객들인 돈 많은 주부들이 세무당국의 조사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내복 한장에 5만원,블라우스 하나에 1백만원,정장한벌에 몇백만원씩하는 수입옷들만 주로 사입는 돈이 과연 어디서 나왔는가를 알아보는 조사다.
또 검찰은 「기업형 폭력도박단」 4개파 26명을 구속했는데 이들이 운영한 비밀도박장에서는 역시 돈많은 유한부인들이 주로 모여 하루판돈 2억원까지 엄청난 노름판을 벌였다고 한다.
이들 부유층 주부들에 있어 돈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한낱 사치와 사행으로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함정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는 스스로와 가정을 황폐화 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푼돈 정도로 여기는 액수의 월급에 생계를 걸면서도 땀흘려 일하는 보람에 사는 절대 다수의 보통시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고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과연 그들의 그 여유는 어디서 온 것이며 그렇게 낭비해도 좋은 것인가.
도시화되고 핵가정화된 오늘의 산업사회에서 주부의 위상과 역할은 전통 농업사회에서와는 많이 달라졌다.
문명의 이기들이 생활화되면서 가정살이의 일상에서 벗어나 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에 참여하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실현하는 기회를 현대 여성들은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값진 자산이다.
특히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여유계층의 주부라면 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이 그 책임을 잊은 채 사치나 순간적 쾌락을 좇고 자녀들을 그릇된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내맡겨 두었을 때 그것은 사회전체에 해독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요즘 대다수의 중산층 주부들이 자신들의 여가와 여유를 사회봉사ㆍ취미생활ㆍ부업 등 자기개발과 가치모색에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음을 안다. 여성들의 교육수준과 생활여유가 높아짐에 따라 이와같은 사회참여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이 수요를 충족해 줄 수 있는 기회와 시설이 확대될 필요가 절실하다.
일부 주부들의 비뚤어진 행태는 역으로 그와 같은 건실한 참여의 기회가 충분치 못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고급인력으로서의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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