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대북 금수품목에 '사치품'이 들어간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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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북한 주민들은 (영양 결핍으로) 수년간 평균 체중과 키가 줄었다"며 "이제는 김정일 위원장도 어느 정도 다이어트(little diet)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을 겨냥한 조치임을 시사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권력 장악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사치품을 활용했다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공통적 판단이다. 벤츠 자동차, 고급 와인, 롤렉스 시계, 캐비아(철갑상어 알)를 나눠주면서 충성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치품 공급이 차단되면 북한 군부와 노동당 핵심 인사들의 충성심이 약화돼 북한 지도부가 심각한 곤경을 겪을 수 있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금수 조치가 미국의 '북한 정권 교체(regime change)' 전략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CNA연구소의 켄 가우스 이사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정권 유지 수단으로 사치품과 달러 등을 이용해 군과 정부 핵심 세력의 정치적.군사적인 지지를 얻어왔다"며 "하지만 사치품이 차단되면 김정일은 정권 강화와 주변 핵심 세력의 통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통치 수단을 박탈해 지도층과의 결속을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부탁한 한국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북한의 해외 계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 소유의 달러가 사치품 구입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 게 이번 조치의 한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9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킨 뒤 그 용처를 면밀히 추적해 왔다. 김 위원장 권력 유지에 사용되는 통치비자금의 입구에 이어 출구까지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이번 조치에 담긴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제재가 효과를 거둘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의 물품 조달은 극히 은밀하게 이뤄져 왔다. 해외 공관을 통하거나 중국과의 밀무역을 통해 조달할 경우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체제 유지의 핵심인 평양의 권력층이 사치품을 못 받는다고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이영종 기자

◆ 유엔헌장 7장=경제 제재는 물론 군사적 제재까지 가능케 하는 국제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조항이다. 평화에 대한 위협, 파괴, 침략행위를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조치를 41조와 42조에 명시하고 있다. 41조는 경제.외교 등 비군사적 조치를 다룬다. 41조가 통하지 않는 경우를 전제로 한 42조는 무력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 안보리 대북 결의 주요 내용

●유엔헌장 7장에 따라 행동하고 필요한 조치는 7장 41조에 따른다.

●유엔 회원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품과 기술을 제공하지 못한다. 사치품도 원산지를 불문하고 이전되지 못하도록 한다.

●대량살상무기와 불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 화물 선박을 검색한다.

●대량살상무기를 지원하는 회원국의 금융자산과 경제자원을 동결한다.

●이 결의 채택 30일 내에 회원국들은 이행한 조치를 안보리에 보고한다.

●대북 제재위원회를 구성, 추가 제재조치의 요청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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