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중국 6세대 감독 2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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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요즘 세계영화계가 한창 주목하는 중국의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올 베니스 영화제에서 '삼협호인'으로 황금사자장을 받은 자장커(賈樟柯.36.(右))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아시아 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됐던 '여름궁전'의 로우예(婁燁.41)다. 첸카이커.장이머우 등 이른바 '제5세대' 감독들이 상업적 대작으로 방향을 돌린 지금, 이들은 작가주의 계보를 잇는 '제6세대' 중국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만난 이들은 산업적 성장의 첫걸음과 정부의 검열이 공존하는 중국영화계의 현재에 대해 고민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여름궁전'으로 칸 경쟁부문 진출 로우예

부산영화제의 떠들썩한 축제분위기와 달리 로우예 감독은 의기소침했다. 신작 '여름궁전'이 아시아 영화로는 유일하게 올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할 정도로 세계적인 대접을 받았지만, 중국에서는 상영금지는 물론이고 감독 자신도 향후 5년간 제작금지를 당했다. 그는 2001년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수쥬'때도 같은 일을 겪었다. '여름궁전'은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배경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청춘남녀의 격렬한 사랑과 이후 엇갈린 삶을 그린 작품이다.

-중국에서 다루기 힘든 소재를 멜로에 담아냈다.

"80년대 말~90년대에 걸쳐진 사랑이라 천안문 얘기를 뺄 수 없었다. 천안문 사태는 전개과정이나 발생이유가 상당히 복잡하고 격렬한 것이 마치 한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극중 인물의 모델이 있나.

"당시 누구는 유학을 떠나 부자가 됐고, 누구는 감옥에 갔다. 죽은 사람도 있다. 최근 반세기 동안 68년과 89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격변기였다. 정치적인 평가나 해결은 영화의 몫이 아니다. 그 격변기를 겪은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려 했다."

-중국 내 상영금지 이유는.

"허가를 받지 않고 칸영화제에 출품한 것 등이다. 다른 이유는, 알겠지만 말 안 하겠다."

-성적 표현의 강도가 센 것도 이유가 아니었을까.

"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현재 중국의 영화검열 제도는 불합리하다. 영화발전을 막는다. 농촌을 소재로 한 단순한 영화나 장이머우 같은 거장의 영화만 상영된다. 영화가 다양해지지 못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중국영화가 한국만큼 발전하지 못한 것은 관련된 당국의 책임이다."

-도시 젊은이의 얘기를 주로 그려왔는데.

"상하이에서 태어나 베이징에 오래 살았다. 급격한 성장의 와중에 도시인들의 내면에 벌어진 일에 관심이 많다. 천안문 사태도 도시인들에게 큰 좌절을 안겨준 일이다. 그 상처를 회복하는 데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산=이후남 기자 ,사진=박민혁 대학생사진기자



베니스 영화제 대상 자장커

자장커 감독은 중국의 독립영화를 일컫는 '지하전영(地下電影)'의 대표주자다. '소무'로 1997년 베를린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은 뒤 중국보다 서구에서 더 유명해졌다. 자본주의 급류에 휘말린 중국 젊은이들의 초상을 가감없이 그리는 그를 두고 허우샤오시엔, 왕자웨이 감독 등은 '중국영화의 미래'라고 부른다. "중국을 아름답지 않게 그리는 최초의 감독"(장이머우)이라는 평도 얻었다.

그는 20일 개봉하는 자신의 영화 '세계'의 홍보 및 12~14일 영화아카데미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 참석을 위해 최근 내한했다.

2004년 베니스영화제 초청작인 '세계'는 전세계 유명 건축물들을 축소해놓은 베이징의 '세계공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얘기다.

-작품 중 유일한 중국 내 개봉작이다.

"지금 중국에는 날아다니는 영화(무협액션)밖에 없다. 중국인들의 현재 삶과 아무 상관없는 것들이다. 개봉을 해보니 더욱 관객들의 진짜 삶과 감정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이다."

-현대 중국을 비판하고 있는데.

"고속성장 중인 중국에는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도시화, 빈부격차, 농촌파괴, 생명경시 등이다. 이는 국경을 초월한 문제다. 현대인의 공통적인 고난과 어려움이 '세계'와 내 모든 영화의 주제다."

-애니메이션의 삽입이 이채롭다.

"아시아 젊은이의 생활에는 인터넷, 휴대폰, 디지털의 비중이 크다. 문자 보내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는데 이 부분은 디지털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뜻한다. 인물이 많고 관계가 복잡한 것도 여러 사람이 얽힌 인터넷상의 인간관계를 보여주려는 설정이다."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차기작은.

"처음엔 문제가 있었지만 돈으로 해결한 뒤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차기작은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한 건달들 얘기다."

-최근 한국영화에 대한 느낌은.

"2년 전부터 중국 정부가 영화를 선전도구 아닌 산업으로 인식하게 된 데는 한국 영화의 급성장이 큰 자극이 됐다.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범아시아인의 느낌이 있는 안성기씨가 가장 관심있는 배우다."

-베니스 수상으로 달라진 점은.

"내가 찍고자 하는 영화를 내 스타일대로 찍었을 뿐이다. 수상이 작품활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물론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에게 큰 격려가 됐다."

글=양성희 기자<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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