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의톡톡히어로] 야만인 코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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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야만인 코난 (로버트 E. 하워드 지음, 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각 권 288쪽, 각 권 9000원)

그는 전쟁터의 한 가운데서 태어나, 약탈과 전투, 유혈과 침략이 횡행하던 북방 야만의 땅에서 자랐다. 적에게 사로잡혀 모진 노예 생활을 했지만, 밤마다 족쇄의 사슬을 갈아 약하게 만든 뒤 탈출을 시도했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이방의 땅을 떠돌며 본격적인 모험을 시작했다.

그가 새롭게 발 디딘 곳은 소위 문명화된 나라들이었다. 사특하고 신비로운 종교, 부자와 가난한 자, 장사꾼과 정치가들이 득실거렸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는 놀라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문명화된 사람들은 무례한 짓을 저질러봤자 해골이 둘로 쪼개지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종종 야만족보다도 더 무례했다.'

그래서 때때로 그들의 머리를 정중하게 둘로 쪼개주기도 했다. 퍽! 조롱과 음모, 위협에 대한 대가로.

문명의 땅에 팽개쳐진 야만인인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어떨 때는 도적이었고, 어떨 때는 용병이었다. 한 때는 장군이기도 했고, 해적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가난한 모험자이기도 했으며, 마침내는 한 나라의 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질은 오직 하나다. 도둑일 때도, 용병일 때도, 해적일 때도, 왕일 때도, 사람들은 그를 야만인 코난이라고 불렀다.

로버트 E 하워드가 창조해낸, 검마소설의 히어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했던 근육질 우람한 전사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되기 훨씬 전부터 하워드의 후예들에 의해 무수히 재창조된 캐릭터, 야만인 코난.

그의 이름을 들을 때,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진 무식한 육체파 남성을 떠올린다면, 그래, 옳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지적이지도 않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뇌하지도 않는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도 의심하지 않으며, 신에게 간구할 간절한 필생의 염원 같은 것조차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다. 내게 적과 맞서 싸울 용기를 주소서!

눈앞의 적을 무찌르는 것 이외에는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는 놈이다. 하지만 그의 야만이 우리의 문명에 비해 저열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틀렸다. 그는 야만인이기 때문에 문명에 오염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전사가 될 수 있었으며, 바로 그 이유로 허약한 문명인 독자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영웅이 된 것이다.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결국 자기 속의 나약함을 두려워한 문명인들이다. 순수한 전사인 코난은 영웅이 된다는 것의 의미도 그다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바람과 숲과 언덕과 구름의 아들' 야만인 코난이니까 말이다.

진산 <무협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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