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더라도 「과거」 잊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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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하느님은 인간을 적당히 망각하면서 살도록 창조하셨겠지만 정작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곧잘 잊어버리고 반대로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은 그 택한 백성들에게 지난날 애급 땅에서의 고역을 결코 잊지 말라고 자주 경고하신다.
그때를 잊고 산다는 것은 고통과 죄악 가운데서 건 져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 된다.
6월은 우리 민족의 가슴마다 큰 상처를 남긴 동족상잔의 달이다.
일제 치하의 고통이 그렇듯이 당시의 수난을 체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들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의 그날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망각해 가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겠지만 공교롭게도 정부는 이 6월에 소련과 수교를 트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고 계속해서 중국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나쁜 과거에 집착해서 살수는 없다. 그날의 아픔을 오늘의 보람과 환희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어두운 과거로부터 빨리 엑서더스 해야한다. 이것은 이 시대에 우리가 마땅히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의 철저한 청산작업이다. 인간 양심과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에 연유한 겸허하고 정직한 과거 청산 말이다.
요즘 매스컴은 지난날 일제의 상상을 극하는 이 민족을 향한 잔학상을 보도하고 있거니와 한국 전쟁의 실질적인 도발자가 북한을 앞세운 소련이라는 사실도 크게 소개하고 있다. 얼마전 일본 왕의 사과 발언이 정치적으로는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참회 없는 문자의 기교는 우리 가슴으로는 여전히 용서될 수 없듯이 이제 한반도 땅을 한때 돌이킬 수 없는 전란 속에 빠뜨린 당사자들을 상대로 관계를 정상화함이 있어 정부는 떳떳이, 그리고 분명하게 과거를 청산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참된 신앙이 과거(죄)를 바로 청산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듯이.
흑자는 이제 와서 지난 일을 시시콜콜하게 들춰내 무엇하겠느냐 할지 모르나 개인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안팎에 응어리진 과거의 깨끗한 청산 없이는 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진정한 용서와 사랑으로 재창조되는 우리의 역사를 위해 과거를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다. 김성영 <용인군 지곡리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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