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국역 사업 전문인력이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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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자로 된 고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국역사업분야에서 북한의 연구성과가 우리보다 앞서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역사업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가 지난해 완간된 북한의 『리조실록』을 입수, 국내에서 번역중인 『조선왕조실록』국역본과 비교 분석한 결과 남북한 국역사업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비교 결과 북한의 『리조실록』은 한글전용방침에따라 실록 전체를 우리말로 쉽게 풀이해 일반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특히 한자로 된 원문을 충실히 분석해 번역이 정확하고 매끄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편집체계등이 뛰어나 국학연구자료로서 편리함은 있으나 한자용어를 그대로 옮겨 일반독자들이 보기에 힘들며 잘못 번역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구체적인 용어 번역 예로 한자로 된 원문의 「상」「서계」「승전」「품재」등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한글발음인 「상」「서계」「승전」「품재」등으로 그대로 옮긴 반면 『리조실록』에서는 「임금」「서면보고」「문건지시」「결정」등으로 풀어 이해를 쉽게했다.
문장번역의 예에 있어서도 원문의 「박어중정」「혼학」등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중의에 부대끼어」「혼학하여」등으로 번역해 이해하기 힘든 반면 『리조실록』에서는「여럿의 요구에 못이겨」「사리에 어둡고 마음이 포학하여」등으로 쉽게 풀이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선왕조실록』이 『리조실록』보다 오역(오역)이 많은 점.
예컨대 원문의 「무출신」「제색군사」등을 『조선왕조실록』은 「출신이 없으며」「여러 고을의 군사」등으로 잘못 번역한 반면 『리조실록』은 「과거시험으로 출세한 일이 없고」「각종 군사」등으로 정확히 번역했다.
그러나 북한의 국역은 한글전용풀이에 치중한 결과 고유명사인 성열왕후까지 「거룩하고 열렬한 왕대비」로 풀어쓰는등 역사연구자료용으로 부적절한면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같이 북한의 국역성과가 남한보다 우수하다는 평가결과는 우리의 국역사업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반증해준다.
북한은 이미 지난 55년 고전국역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북한은 사회과학원 산하에 민족고전연구소를 설치, 우수한 젊은이들을 국역실무자로 양성해 지난 81년 실록번역을 마쳤다. 이후 번역분을 전문가들의 감수를 거치는대로 출간하기 시작, 9년만에 완간한 것이다.
반면 우리의 국역사업은 북한보다 10년이 늦은 65년 민족문화추진회가 설립되면서 시작됐으며 국역전문가양성을 시작한 것은 20년이 늦은 74년부터.
더욱이 북한이 전문연구자들을 고전연구소에 모아 집중적으로 국역사업을 마친데 비해 우리의 국역사업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국역사업은 민족문화추진회 외에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국사편찬위원회등에서 정부지원을 받으며 진행중인데 이같이 사업주체가 분산됨에 따라 국역사업의 일관성이 부족한 점도 문제가 되고있다.
민족문화추진회의 한 관계자는 『같은 고전을 여러곳에서 번역, 일관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으며. 매년초 문교부의 예산지원 결정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종합기획이 불가능하다. 문제해결을 위해 국역사업을 총괄·전담할 기구설치와 이에따른 예산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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