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걸린 「유럽합중국」/EC정상회담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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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통합 12월 정부간 협의회/개념정립ㆍ최종형태 등 난제로
「유럽합중국」의 탄생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6일 폐막된 제43차 EC(유럽공동체) 정당회담에서 유럽 12개국 정상들은 경제 및 화폐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의 원칙에 합의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정부간협의회를 오는 12월14일과 15일 개최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이미 합의된바 있는 경제 및 화폐통합을 위한 정부간협의회와 더불어 정치통합을 위한 정부간협의회가 올연말 로마에서 동시에 열리 수 있게 됐다.
이 두협의회가 순조롭게 진행돼 정치ㆍ경제통합에 필요한 로마조약(EC창립의 근거가 된 국제조약)의 개정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오는 92년말 단일시장 실현을 앞두고 있는 EC 12개 나라는 하나의 경제권내에서 같은 돈을 사용하고,외교와 안보 등 정치분야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는 사실상의 거대한 「합중국」실현에 성큼 다가서게 될 전망이다.
정치통합과 더불어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가운데 하나였던 소련에 대한 긴급경제지원 문제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으나 구체적 지원규모나 방법등에 있어서는 의견이 달라 최종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미 소련에 대해 50억마르크(31억달러)의 자금지원 계획을 발표한 서독과 함께 프랑스는 즉각적인 대소경제지원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돈이 헛되이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련측의 진정한 개혁실천에 대한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는 영국의 주장이 맞서 구체적 합의도출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오는 7월9일 미국 휴스턴에서 개최될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 맞춰 별도의 전문가팀을 통해 EC차원의 구체적 대소경제지원계획을 마련한다는 선에서 이 문제를 종결지었다.
이번 회담은 유럽이 경제 및 화폐통합과 함께 정치통합으로 가는 중대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통합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4월 EC의 정치통합을 가장 먼저 제창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콜 서독 총리는 대외정책과 안보정책에 있어서 EC가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정치통합의 핵심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번 회담에서도 같은 설명만을 되풀이 했을 뿐 더이상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테랑과 콜 두사람의 제안을 가리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가자는 격』이라며 지난번 EC 정상회담에서 대처 영국 총리가 정치통합의 정의문제를 걸고 넘어진 것은 EC 통합자체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온 그녀로서 어찌보면 당연한 불만인 셈이다.
그러나 지역통합의 최종단계가 정치통합이고 일단 시동이 걸린 EC통합의 종점이 정치통합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는 이상 대처총리를 포함한 EC 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 정치통합의 추진원칙에 어렵지않게 합의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문제는 정치통합의 명확한 개혁정립과 함께 정치통합의 최종목표를 설정하고 그 여건을 조성하는 일 등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치통합의 최종목표와 관련,이번 회담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연방적 결과」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그가 생각하는 유럽통합의 최종형태가 「유럽연방체」가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얼마전부터 콜 총리가 쓰기 시작한 「유럽합중국」이란 표현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대처 영국 총리는 『정치통합이 개입해서는 안될 특수한 국내문제에 대해서까지 EC가 개입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된다』고 언명,미테랑의 구상에 벌써부터 강한 견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주권을 가진 여러나라가 공존하면서 필요한 부분에 한해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것으로 각국의 고유통화와 유럽공동통화를 공존시키자는 그녀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포루투갈의 실바 총리가 대처 총리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을 뿐 대부분은 미테랑 대통령이나 콜 총리의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장단일화와 함께 경제 및 화폐통합을 실현하고 아울러 정치통합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수많은 난제와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은 유럽합중국의 건설이 실현 가능한 꿈임을 보여줬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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