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자존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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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드골연구가로 정평이 있는 모랑주는 그의 저서 『골리즘』에서 드골주의(골리즘)란 한마디로 「국민적 자부심」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 사람의 사나이,드골이 지배하고 거기서 하나의 체제 이른바 골리즘이 생겨났을 뿐 골리즘은 어떤 교의나 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모랑주는 이처럼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골리즘,즉 「부활한 국민의 자부심」은 드골이란 한 사나이가 죽은후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지난 18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는 드골 추모열기로 달아있었다고 현지 특파원은 전한다. 바로 영국의 BBC방송을 통해 『프랑스의 패배는 일시적이며,레지스탕스의 불꽃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유명한 대독 레지스탕스 항쟁을 선언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드골장군은… 』으로 시작되는 이 방송은 꺼져 가던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에 불을 붙였고 국민적 자부심에 눈을 뜨게 했다. 위대한 골리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드골의 대장정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루스벨트와 처칠의 갖은 냉대를 받으면서도 조국해방을 위해 그것을 참고 견뎠다. 하지만 그는 결코 비굴하지는 않았다. 그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영웅이 되었다.
드골의 가장 큰 매력은 권력에 연연하지 않은 점이었다. 그는 국민이 자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마자 지체없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46년 총리때는 『즈 퀴트』(나 물러나오)라는 두 단어만을 남긴채 자리를 떴고,69년에는 비서실장에게 『나는 공화국대통령으로서의 기능을 정지하네. 오늘 정오부터 발효야』라는 전화통고 하나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그 전화는 향리 콜롱베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거만하고 초연한 듯 하면서도 드골의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탈레스의 슬기와 골리앗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공유했던 위인.
드골에 대한 평가는 그 어느쪽을 보는가에 따라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앙드레 모루아는 그를 가리켜 『루비콘강까지 대군을 휘몰아 와서는 도하명령 대신 「낚시 개시」라고 외칠지도 모르는 사나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오늘 그에 대한 평가는 『하여간 그는 위대하다』고 한 케네디의 말이 가장 적절할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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