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정책에 손발도 따로/박신옥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단 맛들리면 좀체 줄이기 힘든 것이 에너지소비다.
몇년째 가속적으로 늘고있는 우리의 에너지수요가 바로 그 실례다. 이점에서 동자부가 이해관계를 갖고있는 관련부처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번에 내놓은 「의욕적인」 에너지 소비절약대책은 당연한 조치로 보여진다.
불과 10년쯤 전에 오일쇼크로 빚어졌던 혼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름이고 가스고 모두 사들여 써야하는 우리 실정에서 올들어 무려 20% 가까이 석유ㆍ전력소비가 늘고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90년대 중반께의 3차 오일쇼크,국제에너지위기가 운위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러나 동자부의 이번 대책마련과 이에대한 정부내 기류에는 석연치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대책 자체가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한동안 2백여개의 에너지 다소비업체를 선정해 목표원단위(단위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량)를 주고 에너지 효율화를 강제해 오던 것이 87년부터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슬그머니 없어졌고 기업들의 에너지 절약시절 투자지원도 87년 이후 계속 우선순위가 밀려왔다.
2∼3년 후면 제한 송전이 불가피할 정도로 에너지 소비증가가 발등의 불로 떨어져서야 다시 업체들의 에너지소비 실태를 조사한다,주유소 영업시간을 제한한다는 등의 재탕식 절약규제에 나선다하니 국민의 눈에는 아무래도 미덥지 못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번 대책에는 사실상 휘발유값을 올린다,전기료를 차등화한다는 식의 가격인상을 통한 규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그간 당국의 직무유기(?)를 소비자의 가격부담으로 만회하려는 안이한 발상도 느껴진다.
또 하나는 정부의 에너지 절약에 대한 정책의지가 확고한가 하는 점이다.
대책안이 발표되자마자 누구 맘대로 자동차세를 없애느냐,세제에는 손못댄다는 등 당장 관계부처들로 부터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는 얘기는 정부내에서 조차 아직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못한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더구나 가장 소신있게 일을 추진해 가야 할 동자부가 부처간의 이런 반발에 지레 주눅이 들어 당초 대책자료에 포함시켰던 휘발유 주행세(가칭)부과,자동차 다보유가구의 중과세등의 방안을 발표자료에서 슬쩍 빼고 설명으로만 넘긴것은 이번 대책마련이 다시 의욕과잉 정도로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우려하게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