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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끝낸 상임위원장/「나눠먹기」에 막판까지 “뒷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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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선 따랐지만 계파별 기준달라 혼선/평민몫 진통… 쟁점많은 문공위 되찾아
국회상임위원장 인선이 오랜 진통과 뜸을 들인 끝에 임시국회 개원날인 18일에서야 확정됐다.
민자당이 16석 모두를 독식한다는 당초의 방침을 바꿔 여야 대화정치의 모범을 보인다 해서 세 자리를 평민당측에 할애했다가 평민당이 기존배정수대로 4석을 계속 요구,못이기는 체 이를 수용.
민자당내도 네 자리가 날아가는 바람에 잔뜩 기대했던 의원들이 크게 실망,희비가 교차하고 있고 대충 다선우선을 했으나 계파별로 인선기준원칙이 달라 뒤죽박죽인 측면도 많아 뒷말이 많다.
○…4석 할애도 민자당내 민정ㆍ민주ㆍ공화계에 6대4대2로 배분,나눠먹기식 인선은 안한다고 했지만 어쩔수없이 계파의 기득권을 철저히 인정,현재 계파간 맡고 있는 위원회는 그대로 계파의 몫으로 할당.
민정계는 오래전부터 법사(김중권),외무ㆍ통일(박정수) 내무(오한구) 3개 위원회는 결정.
또 농림수산위는 지난 2년간 원내수석부총리를 지낸 정창화의원이 낙점 대기중이었고,문공위는 이민섭의원이 자신의 출신구인 강원도 푸대접상황을 지적해 안착. 문공위는 민주(박관용)ㆍ공화계(김문원) 모두 초반경합을 벌였으나 박의원은 통일특위쪽에 관심을 기울였고 김의원은 공화계의 배당률이 줄어드는 바람에 아예 탈락.
민정계내 치열한 경합상을 보인 곳이 전국구의 이도선ㆍ이동진의원이 맞붙은 상공.
이도선의원은 박준병사무총장이 호남 배려란 측면에서 밀었지만 김윤환정무1장관이 그가 전남 도지부장ㆍ중앙정치교육원장 등 2개의 당직을 맡고 있는 것을 들어 이동진의원을 내세웠고 여기에 박태준최고위원이 이동진의원쪽으로 기울은 듯하다가 평민에 하나 더 주는 바람에 위태.
재무는 지난 대통령선거때 유세현장 경호팀을 이끌고 총재비서실장을 지낸 경력이 인정돼 김영구의원으로 낙점. 특히 민정계내 TK(대구ㆍ경북)출신이 4석(김중권ㆍ박정수ㆍ오한구ㆍ정창화)을 차지하는 바람에 서울출신인 김의원이 다소 홀가분하게 역대 노른자위라는 재무위에 착석.
민주계는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일찍부터 민정계와 마찬가지로 연임배제방침을 정해 박용만(행정),신상우(보사),황낙주위원장(동자)이 모두 탈락. 대신 다선위주에 따라 총무가 맡는 운영위원장이외에 세 자리에 최형우ㆍ황명수ㆍ정상구의원을 선정. 동자ㆍ보사는 평민당에 주고 대신 가져온 노동에 정상구의원을 박고 행정엔 최의원을 내정.
이번 상위배정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게 국방위에 민간인 출신을 기용하자는 것. 국방위는 으레 군출신이 맡는 게 하나의 관례였으나 문민정치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민주계가 황명수의원을 강력히 천거했는데 당초 민정계에서 김영선의원을 강력천거해 복수로 최종결정을 청와대에서 낙점.
창군이래 군의 최대 현안인 국군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어 국방부에서는 민간인 출신의 기용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민주계는 이미지 개선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황의원을 계속 고수. 황의원은 국방위 경험이 대부분이어서 나름대로 기대해온 눈치.
○…공화계는 2석으로 줄었지만 13대 국회 최고인기 상위로 올라선 교체와 건설위를 공략,실속 우주.
김종필최고위원은 일찍부터 공화계내에서 이대엽(교체)ㆍ오용운(건설) 현 위원장의 연임을 공언해온 상태였지만 민정ㆍ민주계 모두가 「물갈이」를 한 것과 비교할 때 다소 무리한 인선이란 게 중평.
○…민자당이 평민당에 할애한 위원회는 비정치상위인 경과ㆍ보사ㆍ동자. 이들 세 위원회는 정치이슈가 별로 없고 각광도 받지 못해 그야말로 비인기상위.
문공위를 평민당으로부터 회수한 것은 정부ㆍ여당의 오랜 「현안」이었는데 이는 평민당이 맡는 바람에 지난 2년간 언론청문회ㆍ전교조문제 등 수많은 쟁점을 양산해 왔기 때문. 평민당의 문공위 확보는 13대 구 민정당의 최대 「실책」으로 기록됐을 정도.
또 노동위도 노사관계의 안정을 위해선 정치권의 조용한 행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회수.
그러나 평민측이 문공ㆍ노동대신 교체ㆍ건설을 요구하고 나서는 바람에 보사를 넘겨주고 건설은 그대로 고수.
특히 평민당에 넘겨주는 상위 결정과정에서 정부쪽의 상당한 로비가 있었다는 후문.<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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