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타진 정국운영 “분수령”/청와대 영수회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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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견 확인됐지만 공식거론 “신호”/수면하 대화·속깊은 교감에 관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평민당총재간의 여야 영수회담은 비록 정치현안에 대해 이견만을 확인하는 대좌에 그쳤지만 향후 정국운영에서 최대 정치이슈로 등장할 것이 틀림없는 내각책임제 개헌문제를 노대통령이 처음으로 공식거론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노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의사를 타진한 김총재의 문제제기에 대해 『지금은 민생문제등 연말까지 정치·경제적 안정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각제개헌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총선은 내각제개헌 후에나 하겠다』고 임기전 개헌의사를 분명히했기 때문이다.
물론 노대통령이 『꼭 내각제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니 너무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김총재를 달래는 듯한 언질을 주기는 했지만 내각제 개헌의사를 내비친 것은 향후 정국운영과 관련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시국과 관련해 연말까지 내각제 개헌논의 유보를 밝힌 노대통령 의사와 관련없이 실제 내각제개헌을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은 지금부터 본격화될 공산이 크다.
내각제 주창자인 김종필민자당최고위원은 『연내에 사회·경제적 안정을 이루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인 만큼 이에 장애가 되는 논의는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했고 김용환정책의장은 이를 부연해,『현시점이 논의하기에 적합치 않다는 것일 뿐이지 당으로서는 개헌시기를 연기한 적은 없다』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내각제 개헌문제와 관련해 김총재가 장기집권 음모라고 주장한 데 대해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개헌은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각제건 이원집정부제건 나는 이에 일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그러나 내가 6·29선언에서 대통령중심제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나 당시 내각제당론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힌 바 있다』고 내각제소신을 피력했다. 노대통령은 이와함께 『나는 남은 임기만 마치면 물러나지 그 이상의 집권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혀 내각제=장기집권 음모라는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특히 김총재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노대통령이 『내가 내각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3김씨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대통령제에 자신이 있으면 한번 해 보시오』라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노대통령이 매우 강하게 내각제 개헌의사를 표명했고 두 사람 사이에 수면하의 대화가 오고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각책임제 개헌이 되어야 3김씨도 다시 대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강한 설득을 내포하고 있다.
김총재는 그러나 『노대통령이 개헌을 한다면 김총재와 먼저 상의하겠으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개헌에 대한 노대통령의 구상이 아직까지 확고한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소득이라고 조금 다른 각도에서 나름대로 평가했다.
여하튼 김총재의 거부로 당분간은 내각제 개헌문제가 겉으로는 잠잠해지겠지만 기회있을 때마다 수면위로나 수면아래로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나 정가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다.
특히 이날 노대통령과 회담하고 돌아온 김총재가 「성과전무」를 보고하면서도 장외투쟁의 극한수단을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양자사이에 속깊은 교감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오가고 있어 앞으로의 개헌논의 진전이 주목된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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