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부시 긴급 전화회담 "강력한 공동대응책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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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본 정부는 9일 숨가쁘게 움직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소식을 접한 오전에 긴급 고위 안보관계자 회의를 소집했으며, 총리 관저에 긴급대책실을 마련했다. 이어 오후엔 외상.방위청장관 등 관련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안전보장 각료회의를 열고 상황별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 "미국과 연계해 대북 압박 강화"=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이날 오전 서울에 도착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시내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관방장관으로부터 핵실험 보고를 처음 받고 미국 등 관계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서울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긴급 전화회담을 하고 강력한 공동 대응책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그는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유엔이 북한 핵실험에 단호한 행동을 취하도록 즉시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며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중국.한국 등과 연계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총리를 대신한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즉시 위기관리체제를 가동했으며, 방위청.기상청 등 관련 부서를 동원해 기술적 분석에 들어갔다. 아소 다로(生太郞) 외상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큰 위기를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 안보리 제재와 선박 검문.검색으로 이어질 듯=일본 정부는 미국과 협력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나갈 태세다. 아소 외상은 "북한의 핵실험 예고 이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 온 것이 있다"며 "앞으로 어떤 수준에서 조치를 취할지 구체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예상되는 조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채택 추진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한 직후엔 의장 성명으로 경고하는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제는 더욱 강력한 내용의 제재결의안 채택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현재 안보리의 순회 의장국을 맡고 있다.

시오자키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대사와 만나 북한 핵실험 문제를 안보리에 상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유엔 헌장 제7장을 결의안의 근거에 포함시켜 무력행사의 가능성을 열어놓을지 여부다. 포함을 원하는 미국.일본과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인 중국.러시아의 대립이 예상된다.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의 수출입과 이전을 금지하는 조치도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강력한 압박 수단은 북한을 왕래하는 모든 선박을 공해상에서 검문.검색하는 것이다. 이는 대북 해상봉쇄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을 방문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차관은 이미 미 정부 관리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일본 정부 독자적으로 ▶북한 선박의 전면적인 입항 금지 ▶농수산물 수입 규제 등을 실시할 것도 검토 중이다. 일본은 이미 올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만경봉호의 입항금지 등 제재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입각해 지난달 금융제재 조치를 발동한 바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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