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남는데 쌀값은 왜 오르나/방출조절 잘못… 공급부족(경제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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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섯달사이 13.4% 올라 물가상승 주도/농민의 이해관계ㆍ고급쌀 선호등이 문제
쌀은 남아도는데 쌀값은 왜 오르고 있는가.
예년같으면 단경기인 7,8월에야 오르던 쌀값이 올해는 5,6월부터 때이른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물가잡기」의 총력전에 나선 경제기획원은 쌀값을 떨어뜨리라고 농림수산부에 연일 불호령이다.
쌀값은 물가오름세를 계산할때 단일품목으로는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물가당국의 반응이 이처럼 민감하게 나타나고 있다.
농림수산부는 상황실까지 설치,정부보유미를 지난달 18일부터 무제한 방출하면서 일일가격 점검체제에 들어갔으나 한번 오름세에 접어든 쌀값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쌀값은 작년말 1가마(80㎏)에 도매가(한은조사)가 8만8천3백86원에 불과했다.
이는 작년 추곡수매가(일반벼 2등품기준) 9만6천7백20원보다도 8천원이상 밑도는 가격이다.
그러다 4월하순부터 오름세를 타기 시작,지난달 5일 9만6천21원,25일 9만9천8백96원에서 지난 5일에는 10만2백16원으로 10만원선을 넘어섰다.
불과 5개월사이에 13.4%나 급등,1∼5월중 도매물가상승률 3.1%와 비교할때 쌀값이 물가상승을 주도했다는 눈총을 받게끔 된 것이다.
사실 농림수산부는 지난 4월까지만해도 정부미 방출을 계속 제한해오는등 쌀값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써왔다.
작년 추곡수매가 인상폭이 크기도 했지만 산지쌀값이 수매가를 계속 밑돌아 농민들로부터 『도대체 정부가 뭘하고 있느냐』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5월들어 쌀값이 급등세로 반전,정부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추곡수매량은 88년의 두배가량인 1천2백만섬에 달해 일반농가의 쌀 재고가 부족한데다 정부 보유 방출량까지 제한함으로써 공급부족에 따른 쌀값급등을 불러온 것이다.
농림수산부는 뒤늦게 물가비상이 걸리자 지난 18일부터 작년산 일반미를 포함,정부보유미를 무제한 방출하기 시작했다.
또 13일부터 정부미소비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보유 일반미가격을 가마당 9만원에서 8만7천원으로 인하했다.
사실 쌀값문제는 워낙 농민들의 이해가 민감하게 걸려있어 경제논리로만 풀어질 일은 아니다.
물가급등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기획원측은 현재 쌀값이 작년말 수준까지는 내려가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농민들은 올들어 통화가 많이 풀리고,환율이 올라가고,임금상승의 고삐가 늦춰지지 않는등 물가상승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우리가 왜 또 희생돼야 하느냐』는 불만이 당연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아 쌀소비패턴의 급격한 변화도 정부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을장마로 미질이 좋지 않은데다 너도나도 최고급 쌀인 경기미를 찾아 같은 일반미라도 정부미는 인기를 잃었다.
지난 3년간 임금은 67%(명목임금)나 오른데다 식생활개선으로 4인가족 기준 한달 쌀소비량은 36㎏으로 줄어 경기미를 먹더라도 추가로 드는 가계부담이 1만원 안팎인데 구태여 정부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마치 모든 애연가들이 소득에 관계없이 6백원짜리 88담배를 선호하듯 쌀소비도 꼭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농림수산부는 일단 정부미 방출을 확대한데다 농가가 모내기철에 접어들어 임금지불 등을 위해 그동안 남겨뒀던 쌀을 내게되면 쌀값은 앞으로 다소 안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단경기를 앞둔 쌀값상승문제는 굳이 올해가 아니더라도 해마다 되풀이 되는 것으로 정부보유미가 계속 쌀값조절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실에선 지금까지 증산위주의 양곡정책을 질적으로 대폭 옮겨가는 등 양곡정책의 일대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한종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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