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이웃 아픔 전하려 시 쓰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밤마다 떨어진 소주명이/나뒹구는 담당구역은/산재병원 입원실의/목발을 짚은 사나이의 가래침이/깊은 갱속에 묻고온/살점과 뼈 조각들로 술렁거린다./80년대 풍요로운 정의와 복지사회 속에서/광산근로자들이 치르는 전쟁의/잔상들을/나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가/운동장에 떨어져 깨진 병 조각으로/줍고 있다.』(『장성국민학교에서 찍은 다섯장의 증명사진』중)
평창에서 출생, 황지·철암·장성·태서국민학교등 태백탄전지대에서 10년째 광창의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시인 이응률씨(30).
86년 강원일보, 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각각 당선, 데뷔한 이씨는 그러나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는 일단 접어두고 시를 써 올초 광원 정연수씨와 함께 2인시집 『단단한 석탄, 팔리지 않는 우리들의 희망』을 펴냈다.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로 광산이 문을 닫자 제자들이 전학을 가고 그러한 전학서류를 꾸미면서 나는 소리없이 울곤 했습니다. 석탄이 채산성을 잃어버린 땅에 삶의 채산성마저 잃어버린 이웃들의 아픔을, 그 이웃이 제자들의 아버지 모습인 것을 외면하고 동화만 쓰기에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광주의 5월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하고 많은 시인들이 석탄산업합리화로 수만명이 생존권을 잃고 헤매는 태백은 이야기하지 않아 부득이 태백을 말하기 위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이씨는 한계상황에 도달, 비유를 잃어버린 태백을 위해 시를 쓴다기보다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위 인용시에서도 드러나듯 그의 시는 산제병원과 한 울타리로 구분된 강성국교에 근무하면서 산재병원의 환자, 가정방문에서 본 산재환자 학부형의 모습등을 그대로 찍은 것들이다.
『나의 젊음이 탄전에서 교육을 캐는 일로 시작해 정서가 검은 지층속을 헤매며 자아가 무너지는 갱앞에 닿아있는한 나는 광원들의, 아니 학부형들의 이야기를 찍어내는 일로 절망하겠습니다. 시로써 획득해야 할 몫은 이땅의 시인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나는 내고장의 삶이 캄캄할수록 그 절망속에 살아있는 날의 희망을 캐기위해 불면의 밤을 계속할 것입니다.』 <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