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마허, 박수칠 때 떠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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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스즈카 서킷에 입장하고 있는 미하엘 슈마허. [스즈카 AP=연합뉴스]

"백만 번 고맙습니다, 미하엘(Danke Million Mal, MICHAEL)."

6~8일, F1 일본 그랑프리의 공식 일정이 진행된 스즈카시 스즈카 서킷(경기장)은 거대한 이별 무대였다.

미하엘 슈마허(37.독일)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팬들과 그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로 스즈카는 붉게 물들었다.

(붉은색은 슈마허의 소속팀 페라리의 고유 컬러다) 은퇴를 앞둔 미하엘 슈마허의 마지막 일본 무대였기 때문이다.

1994년 25세 슈마허는 이곳, 스즈카 서킷에서 생애 첫 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슈마허는 91년 데뷔 후 16년 동안 일곱 번이나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F1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8일 일본 대회는 올 시즌 18대회 중 17번째에 해당하는 시즌 막판 레이스였고, 슈마허의 여덟 번째 우승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대회였다. 슈마허는 1일 중국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줄곧 시즌 선두를 달리던 르노팀의 페르난도 알론소(25.스페인)와 함께 공동 시즌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려던 슈마허의 꿈은 큰 장애에 부딪혔다. 8일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레이스 도중 머신(자동차)이 엔진 고장으로 경주로를 이탈하는 바람에 실격됐기 때문이다. 그 틈을 타 알론소가 우승을 차지하며 종합점수 126포인트로 슈마허(116점)를 따돌렸다. 알론소는 1주일 만에 단독 선두에 복귀했다. 이제 대회는 브라질 그랑프리(22일) 한 번만 남았다. 다음 대회에서 슈마허가 우승(10점)을 하고, 알론소가 0점이 돼야 겨우 동률이 된다.

그의 시즌 우승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경주로 밖으로 미끄러져 나간 머신에서 슈마허가 내렸다. 그는 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안아주었다. 풀이 죽어 있는 젊은 엔지니어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고, 어깨도 어루만져 주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엔진 결함으로 우승의 기회를 놓쳤지만 그는 자기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마치 트랙 위에서 머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듯이 경기장 밖에서도 그랬다.

독일에서 슈마허의 별명은 '장모가 사랑하는 남자'다. 가정적인 남편이라는 의미다. 경기장을 찾은 기무라 미도리(38.여.아이치현)는 "경기에서는 언제나 완벽하게 승리하는 영웅이지만, 가정에서는 따뜻한 가장으로 돌아간다. 그 모습에 반했다"고 말했다. 그녀 곁에 있던 남편 다쓰하루(38)는 "(91년 데뷔 후) 슈마허와 함께 한 16년이 행복했다"며 "올해는 벼르고 별러 아내와 함께 모나코 그랑프리까지 다녀왔는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스즈카 서킷에서 열리던 일본 그랑프리는 내년 시즌부터 후지 서킷으로 옮겨서 치러진다. 스즈카 서킷은 62년 혼다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회장에 의해 세워져 일본 모터스포츠의 모태가 됐다. 혼다는 88년 한 시즌 16번 대회 중 15번을 휩쓰는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F1은 혼다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다음 시즌 일본 그랑프리를 개최하는 후지 서킷은 도요타 소유다.

슈마허와 스즈카 서킷, 성대한 두 개의 이별을 맞이한 스즈카는 팬들로 완전히 마비됐다. 7일 예선전에만 18만 명의 관중이 모였다. 8일 본경기 관중은 20만 명을 넘었다.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접어드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스즈카=강인식 기자

◆ F1=포뮬러(formula)1의 약칭. 포뮬러는 경기에 사용되는 자동차가 규격화돼 있어 붙여진 명칭으로 F1은 배기량 2400cc 이상의 차들만 출전하는 대회다. 경주용 차는 뾰족한 차체에 밖으로 나온 광폭의 타이어를 장착한 것으로 '머신'으로 불린다. 최고속도는 시속 360㎞ 안팎이다. F1 대회는 18개국에서 18차례의 레이스(올해 기준)를 펼치고 각 레이스의 점수를 합쳐 챔피언을 가린다. 시상은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자동차 제조업체)로 나누어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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