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막으려면 노 대통령 단호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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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의 '10.3 핵실험 발표'는 허풍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핵 개발을 추진해 왔으며, 조만간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실험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워싱턴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북한의 한 당국자는 최근 평양을 방문한 미국인 학자에게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암묵적으로 용인해 준다면 양국 간 '평화 공존'을 정착시킬 수 있는 북.미 잠정 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관리는 6자회담을 양자 간 회담으로 전환하고 경수로를 북핵 문제의 주요 이슈로 삼는 것이 잠정 협정 체결을 위한 첫째 조치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의도대로 미국이 대북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북한 당국도 내심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 정책을 널리 선전하고, 핵실험을 미국의 탓으로 돌리는 핑계로 활용할 속셈 같다.

북한의 입장에선 핵실험의 타이밍만이 유동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핵실험 시기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갑자기 떠오른 것이 한국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일본의 아베 정권 출범으로 대북 압박이 더 심해질 것으로 계산하고 핵실험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무섭긴 하지만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베이징이 북한 정권의 교체에 나설 정도는 아니라고 평양은 판단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일본은 대대적인 대북 제재에 나설 것이다. 미국도 유엔 안보리 7조에 따른 대북 제재를 밀어붙일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이 정도 난관은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북.중 교역이 정상화되고 한국도 대북 지원을 재개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부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청와대가 북핵 문제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핵실험을 강행해도 대북 화해 정책이 계속 될 것이라고 암시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말랑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미국.일본.유럽과 함께 핵실험시 모든 남북관계가 중단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첫째, 중국은 한.미.일 동맹 강화를 우려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둘째,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한국의 제안을 더욱 존중할 것이다. 셋째, 북한도 상황 변화를 깨닫고 6자회담 복귀를 검토할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뒤에 또 다른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한 뒤 미국과 핵물질 이전 금지 협상을 벌이거나 핵 군축 협상을 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이게 바로 평양이 노리는 바다. 북한은 협상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며 핵무기 재고를 차곡차곡 늘릴 것이다. 북한은 또 핵탄두가 장착된 장거리 대륙 간 탄도 유도탄(ICBM)을 실험할 것이다. 이 모두 미국과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다. 이 경우 한국은 소외되고 동북아에는 극도의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에 직면한 청와대는 평양에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남북 간의 긴장 완화와 화해는 차후에 해도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강력하고도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정리=강병철 기자

◆ 마이클 그린=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1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5년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문제를 다뤄온 아시아통이다. 오하이오주 케년대 출신으로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 국방부 등지에서 근무했다. 현재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선임고문 겸 일본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글은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보좌관이 북한의 핵실험 계획 발표에 따른 국제 정치적 파장을 심층분석해 8일 본지에 단독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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