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자재 갈수록 파동 번져 공사장 찬바람|아파트·도로 건설일정 큰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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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건자재 파동이 날로 확산되면서 아파트·도로 등 각종 공사가 제 일정을 못 지키는 등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시멘트와 철근부족으로 야기되는 이 같은 파동은 장마철에 접어들어 공사량이 줄어들기 전까지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아 현장 관계자들을 더욱 애타게 하고 있다.
정부는 건자재의 수입이 늘면서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건설업계는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건자재에 그치지 않고 인력난과 맞물려 이중 삼중으로 꼬이고 있다. 어렵사리 인부를 구했으나 시멘트와 레미콘이 공급 안 돼 작업이 진척·되지 못하는가 하면 일감이 없어 돌려보낸 기능공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최근의 건자재파동과 이에 따른 대책 및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본다.
◇공사현장〓삼성 종합건설이 서울 도곡동에 짓고. 있는 아파트 (2백31가구)는 내년 6월로 예정된 입주일을 못 지킬 형편이다. 공사를 시작한 지난 3월부터 차질을 빚은 건자재공급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남대문옆 (주)대우의 연세재단빌딩 신축공사장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공사를 제대로 진척시키려면 보름치의 자재를 비축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 날 필요한 양도 못 구해 공사 일정이 이미 4개월이나 처져 있다.
수도권 및 지방에서도 자재와 인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분당 및 평촌신도시 아파트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인근지역의 시멘트 대리점은 물건이 바닥나 개점휴업 상태다.
동아건설의 광양제철소 내 광양제강공장에는 농번기가 시작되면서 잡역부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작년 말만 해도 이들의 일당이 1만원안팎이었으나 요즘은 1만3천원을 준다해도 일손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
◇건자재 파동배경 및 원인〓2백만가구 주택건설 계획과 수도권 신도시사업 등 주택건설에 따른 공사량이 급증한데 일차 원인이 있다.
특히 올초 전·월세 파동대책으로 나온 다가구주택 및 산업평화 차원에서 추진중인 근로자주택건설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택건설 외에 제2경인고속도로, 대불산업기지,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 등 서해안개발사업을 비롯한 대규모 공공사업도 많은 건자재와 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또 토지공개념법의 시행에 따라 기존의 나대지에 상가나 오피스텔 신축공사가 한창이고 여기에 일부 대리점의 매점매석행위까지 겹쳐 건자재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품목별 상황〓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이 레미콘이다. 1·4분기 중 출하량이 작년동기보다 45%나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애로는 풀리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32개 레미콘회사들은 1∼3월중 거의 풀가동 체제로 들어가 3백80만입방m의 레미콘을 생산하는 호황을 누렸으나 지금은 가동률이 50∼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멘트를 공급받지 못해 이이상 생산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미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멘트 공급 확대가 선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해 국내 시멘트 수요량은 작년보다 23% 늘어난 3천4백5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 국내 9개 업체의 년 생산능력은 3천3백50만t에 불과하다.
얼핏 보아서는 수급에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멘트재고가 이미 연초에 바닥났고 3∼4월에 들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급부족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5월 한달간 국내 시멘트 공급량은 2백70만t으로 필요량보다 20%이상 적은데다 가수요 및 매점매석 행위까지 경쳐 실제 피부로 느끼는 공급 부족률은 이보다 두 배는 높다고 업계는 호소하고 있다.
공급부족이 심화되면서 가격도 크게 뛰어 40kg 한 부대가 공장출고가격 (1천9백90원)보다 거의 두배나 높은 3천5백∼4천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그나마 중소업체들은 웃돈을 주지 않고는 물건을 받기 힘들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시멘트업계는 88년 하반기부터 공장증설에 착수, 성신과 아세아시엔트 두 곳은 지난4월 증설을 완공했으며 쌍룡·한일·한라 등 다른 5개사들도 8월까지는 모두 1천만t규모의 증설 채비를 갖추기로 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올들어 잦은 비로 인해 증설공사가 현재 4O일이상 늦어지고 있어 시멘트갈증이 완전히 해소되려면10월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멘트와· 함께 주요 기초건자재인 철근의 수급불균형도 심상찮다.
4월말 t당 27만6천원(10mm기준)하던 대리점가격이 한달새 31만∼32만원으로 15%안팎 오른 것이 공급부족의 실상을 잘 말해준다.
메이커로부터 직접 공급받는 현대·삼성·대우 등 대형건설업체들조차 줄을 서서 「배급」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5월 하순 현재 23만t이 수입돼 물량에 다소 숨통이 트이고 있으나 중소업체들이나 개인이 대리점에서 철근을 구입하려면 t당 1만∼3만원의 웃돈을 주고 보름내지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올해 국내 철근수요량은 작년보다 35%나 늘어난 5백만t에 이르는데 대체 생산설비까지 모두 이용해 생산할 수 있는 양은 4백60만t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와 업계는 수출을 최대한 줄이는 한편 지난 19일부터 관세율을 2%(종전5%)로 내려 올해 수입목표를 2O만t에서 50만t으로 늘려잡고 있다.
그밖에 콘크리트파일(기초공사용 콘크리트 말뚝) 생산 확대를 위해 현재 13개 업체가 오는 8∼9월까지 공장 신·증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 경우 현재 1백26만본인 생산능력은 1백60만본으로 늘어나게 된다. .
그러나 올해 국내수요가 1백80만본에 달할 예정이어서 업계는 이달부터 공장 가동시간을 종전 하루 10시간에서 14시간으로 연장했다.
세면대·변거·욕조등 위생도기도 올해 국내수요가 74만조인데 생산량은 58만조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계림·대림요업·동서산업 등 주요업체는 내년6월까지 27만조의 증설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정부는 수입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한편 시멘트와 철근파동에 가려 지금 당장은 문제가 덜 심각해 보이나 앞으로 장기적으로 골치를 썩힐 것 중의 하나가 골재(모래·자갈)다.
정부는 이달부터 팔당호와 임률강 유역을 새로운 채취장으로 지정했으나 상수원 오염문제와 상충돼 본격적인 채취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 골재는 92년이면 바닥날 미사리 채취장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다. 가격도 꾸준히 올라 서울지역의 경우 모래 1루베가 작년하반기보다 1천2백원 안팎 오른 6천7백∼7천원(운반비포함)에 이르고있다.
◇인력난〓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적 추세에 따라 노임이 큰 폭으로 오른 것은 물론사람 구하기 자체가 힘들다.
서울의 경우 잡역부 일당이 작년보다 50%나 오른 1만8천원에 이르고 있으나 젊은 사람들은 좀처럼 구하기 어려워 40∼50대가 주류를 이룬다.
단순 기능공이 아닌 미장공·조적공(벽돌쌓는 사람)·형틀공·비계공 등의 일당은 4만∼6만원 선이나 필요한때 모자라는 사람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5천∼1만원을 더 줘야 한다.
지방공사현장에서는 농번기가 다가오면서 인부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데 현대산업개발 분당아파트현장의 한 관계자는 『언젠가는 우리도 필리핀이나 태국근로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공사를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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