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 닫는 것보다 근로시간 늘린 폴크스바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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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럽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독일 폴크스바겐의 노사가 근무시간을 주 28시간에서 최대 33시간으로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임금은 동결해 사실상 시간당 임금이 삭감됐다. 그 대신 회사 측은 2011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기로 노조에 약속했다.

당초 회사 측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6개 생산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2011년까지 2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노조가 버텼으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경쟁은 치열해지는 냉엄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 합의로 회사는 인건비를 줄여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고, 노조는 일자리를 계속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강성 노조의 산실이었던 독일에서 최근 폴크스바겐과 유사한 노사 합의가 늘고 있다. 유압기기 생산업체인 하베의 노사는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인도 현지공장을 독일로 유턴하기로 합의했다. 일자리가 생긴다면 임금이 줄고 일이 고된 것은 견딜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덕분이라고 한다. 상생(相生)의 노사 관계가 굳어지면서 독일 경제는 1%대의 저성장에서 벗어나 올해 2.5% 안팎의 성장을 이뤄낼 전망이다. 더 이상 유럽의 병자가 아닌 것이다.

독일의 노동여건이 우리와 다르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하자'는 독일 노사의 노력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우리처럼 최하위권인 세계 114위의 노사협력(세계경제포럼 국가경쟁력 순위)으로는 공장과 일자리를 해외로 내몰 뿐이다. 아예 문을 닫는 것보다는 조금씩 양보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훨씬 낫다는 사실을 노사 모두 유념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