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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늘푸른 소나무 - 제3부 범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김원일 최연석 화
『언양으로 떠날 때 해수병에 효험좋다는 탕약을 두 재 지어서 갔지요. 내가 선화를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선화가, 아직도 환고향할 때가 이르다며 나서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부모임 생전에 그 소원을 못 풀어드리면 평생 후회하게 된다며 내가 부득부득 앞장을 세웠지요. 역을 몰랐을 대는 몰라 그렇다지만 알고 난 뒤 스스로가 미욱한 짓을 자초해서야 되겠소. 또한 역술소를 동래로 옮긴 후 선화를 보러 오는 손이 많아 입신(입신)의 초입에 들었다고 볼 수 있으니 칠 년 세월이라면 환고향할 만한 때도 됐지요.』
배경춘의 말이었다.
『선화가 그렇게 신수(신수)를 잘 맞힙니까?』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석주율이 물었다.
『선화한테는 눈뜬 자가 가질 수 없는, 그 뭐랄까, 신통력이랄까, 신비한 능력이 있어요,. 영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선화의 그 신통력에 모두 놀랍답니다. 석형, 세상일이 그렇잖아요,. 농사나 상업처럼 이런 일도 직종이라 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데리고 오고, 두 사람이 네 사람을 데리고 옴으로써 손님들이 곱셈 수로 늘어나고 있지요.』
『오라버니, 선생님이 괜한 말씀을 하십니다. 역풀이는 선생님이 다 하시고 저는 그저 그 괘를 읊조릴 뿐이지요. 사람들은 다 모자라는 점이 있고 그 모자람을 채우고 싶어하기에, 저는 빈 독에 물을 채우려 할 대 그 손에 표주박을 들려주는 말만 해준답니다.』
베경준은 한껏 신명이 오르는지 간수 쪽을 흘낏 보고는 선화의 말을 단박 받았다.
『선화는 이제 명이괘(명이괘)에서 벗어나 환(환)의 괘로 접어들었습니다. 바람 불어 물 위에 널린 티끌을 쓸어내듯, 고난과 좌절에 갇혔던 새가 그물을 벗어나 창공을 날 듯, 그런 운세요. 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얻어진 열매가 아니라 참고 참는 인내와 각고의 노력 끝에 수확한 추수로 봐야지요. 선화의 슬기로움이 거기에 있습니다.』
석주율은 무엇에 홀린 듯, 입을 꼬옥 다물고 그림처럼 자기를 건너다보고 있는 선화의 맑은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운명을 역으로 풀이해 내어 현재와 미래는 맞힌다는 그 괘를 믿지 못했으므로, 마치 두 사람이 뱉는 주술에 홀린 느낌이었다. 그러자 간수가 시간이 되었다며 폐쇄판(폐쇄판)을 무심히 닫아버렸다.
『오라버니, 겨울옷과 영치금을 차입했어요.』
선화의 말이 폐쇄판 저쪽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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