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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사죄하고 진실밝혀야"|태평양전쟁 희생유족 일대사관 앞 열흘째 농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 제2차 세계대전.
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짐으로써 전쟁은 끝났지만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꼴려가야만 했던 한국인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21일 오전11시 서울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맞은편 공터.
50대에서 70대까지의 할아버지 할머니 50여명이 뙤약볕 아래서 쑤그리고 앉아 지휘자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본국왕 아키히토는 아버지의 죄를 속죄하고 한국인희생자 모두에게 사죄하라.』
『강제 연행된 한국인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라.』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회장 배해원) 회원들은 11일부터 열흘째 매일 오전8시면 일본 대사관 앞에 나와 일본에 대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때로는 대여섯 명이 오기도 하고 1백명이 넘게 시위를 벌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결국 『일본이 전쟁으로 과거를 뉘우친다면 지금까지 숨겨왔던 진실을 밝히고 한국민에게 사죄하라』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에 징용이나 징병·정신대 등으로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들 문제가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65년 김종필-오히라 메모에서였다.
당시 협정에서 일본은 협정체결 10년 뒤부터 한국인희생자 1인당 30만원씩의 보상금을 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버렸다.
그나마 자신들이 사망자로 인정하는 2만1천9백여명에 대해서만 보상한다는 내용이었다.
『1백만명이 넘는 희생자중에서 2만명만 보상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항의시위도 벌였지만 서슬퍼런 유신 때라 그나마 감지덕지 해야할 판이었습니다.』
희생자 유족 양순임씨(46)의 말이다.
결국 75년 일본이 희생자로 「인정해준」 9천5백여명만이 30만원을 받았다.
『전범자 일본은 돈 몇 푼을 주고는 그들의 죄악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전쟁 때 강제로 끌려간 군인과군속은 몇 명이며, 정신대로 끌려간 한국처녀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우리 정부마저 65년 회담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선전하며 국민들을 속여 왔습니다.』
87년 대만의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들은 일본재판소에 전쟁피해 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여론이 일자 일본은 서둘러 20만7천여명의 중국인에 대해 일단 1인당 1천만원씩을 보상해줬다.
정작 최대피해자였던 한국인들 중 9천5백여명만이 3O만원씩을 받은 것에 비하면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한국의 유족들을 더욱 분노케한 것은 일본의 파렴치였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은 국내에 있던 일본인 6만여명을 교전국 국민이란 이유로 3년여 동안 강제수용소에 수용시켰던 적이 있다.
일본은 이 같은 사실을 문제삼아 89년10월 수용됐던 일본인 전원에 대해1인당 2만여 달러씩의 보상을 받아냈다.
자신들이 끌고 가 죽인 한국인들의 유족들에 대해 『이미 보상까지 마친 끝난 얘기를 더 이상 거론치 말라』고 요구하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본의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일본 내의 양심있는 인사들 사이에서 자생의 소리를 일게 해 지금은 「일본국에 대하여 공식진사와 보상을 촉구하는 재판모임」이 일본 내에 조직돼 한국인희생자 유족들의 활동을 돕고있다.
『아픈 과거를 자꾸 들춰내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감춰지고 숨겨진 진실들을 올바르게 드러내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때만이 진정한 우호와 선린이 가능한 것입니다.』
희생자 유족들의 주장은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국민 모두가 갖고있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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