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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신데렐라는 '이 악물고 꿈을 키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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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차이니즈 신데렐라

애덜라인 옌 마 지음, 김경미 옮김
비룡소, 296쪽, 9000원

소녀는 천덕꾸러기였다. 태어난 지 2주 만에 생모가 죽는 바람에 "엄마를 죽인 재수없는 아이"라는 형제들의 구박을 듣고 자라야 했다. 새엄마는 소녀를 무시했고 자신이 낳은 두 아이와 철저히 차별했다. 새엄마의 장단에 놀아난 아빠는 딸의 생일과 이름도 정확히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다. 성적이 남달리 뛰어났던 소녀의 유일한 낙은 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글 쓰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훗날 의사가 된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빛나는 유리구두로 행복을 찾은 신데렐라처럼.

'차이니즈 신데렐라'는 중국 출신으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애덜라인 옌 마의 자전소설이다. 내과의사 26년 경력의 옌 마는 1997년 자서전 '떨어지는 잎들(Falling Leaves)'이 1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이 책은 37년 중국 톈진에서 대가족의 다섯째딸로 태어난 그가 경제적으로는 유복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엄혹하기 그지없었던 어린 시절을 써내려간 것이다.

옌 마의 유년 시절은 일본이 만주에 이어 베이징과 톈진까지 점령했던 정치적 격변기이기도 했다. 중국의 정정불안과 전통적인 남녀선호사상, 여기에 계모 슬하라는 특수 상황이 겹치면서 그는 열다섯살이 될 때까지 톈진과 상하이, 홍콩 등을 전전하게 된다. 이때 경험한 불안과 슬픔은 소설 구석구석에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도사리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그러나 옌 마의 기록은 단지 "부모의 사랑에 목이 마른 어린아이의 슬픔"만을 회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희망과 의지를 거듭 강조한다. "여러분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이 뭐라고 하든 그 말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소중하고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소녀는 국제희곡쓰기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아빠의 인정을 얻어낸 뒤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중국판 신데렐라' 이야기가 힘 있고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이런 아이답지 않은 굳은 심지와 꿈을 향한 부단한 노력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소녀의 애정도 절절하게 그려진다. 그는 "글쓰기 덕분에 일상 생활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글을 쓸 때면 내가 엄마를 죽게 만든 천덕꾸러기 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서 천국을 발견했던 옌 마의 필력은 수준급이다. 유일한 위안거리이던 오리가 짓궂은 오빠들의 장난으로 사냥개에 물려죽는 사건은 소설에서 가장 감정선을 건드리는 대목이다. 오리를 목련나무 아래 묻은 뒤 "그후 나는 목련꽃 냄새를 맞을 때마다 늘 비슷한 상실감을 맛보았다"고 회상하는 구절이 애잔하다. 자녀양육에서 정서적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초등 5학년 이상.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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