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 늘푸른 소나무-제3부 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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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원일 최연석 화
납작모자가 서른여섯 명의 합격자를 손가락셈하더니 노무라에게, 네 명을 더 채우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실격자 중에서 다시 네 명을 차출하게 되었다. 알몸으로 팔짱을 낀 채 덜덜 떨며 섰던 열여덟 명의 실격자들은 눈치로서 그 결정을 금방 알아차렸다. 실격자들은 그 네 명중에 자기가 들어야 한다는 초조감으로 쥐눈을 반짝이며 노무라와 납작모자를 쳐다보았다. 둘에게 좀더 잘 보이기 위해 가슴을 젖히고 목을 길게 뽑은 자도 있었다. 석주율만 이 무심한 얼굴을 마루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실격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그물을 뜨지 않은 밤 시간에 꼭 참선을 한 시간씩 해야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기운이 뻗치는 이유도 식욕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므로 참선을 통해 그 욕망 또한 억제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안차, 안차.』
노무라가 손짓으로 실격자들을 낮게 하고는 손가락에 침칠을 하여 실격자의 개인 신상명세서를 들쳤다. 그래서 실격자 중에 여러 수인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앉혔다 하던 끝에 납작모자와 의견 일치를 보아 세 사람을 추가로 뽑았다.
-저 치를 뽑읍시다.
납작모자가 지휘봉으로 석주율을 가르쳤다.
-저 몸으로는 힘들텐데요. 더욱 국사범으로 재범이 아니오.
노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석주율은 자기를 지목함을 알고 얼굴을 들었다. 납작모자의 날카로운 눈과 마주쳤다.
-어떤 험한 놈도 우리한테 넘어오면 양처럼 순해지지 않을 수 없지. 약골이긴 하나 글줄을 아는 자니 쓰임새가 있겠지요. 국어도 해독한다지 않았소?
납작모자가 말했다.
『1022번, 나와』.
노무라가 석주율을 불러내었다.
간수는 수인들에게 옷을 입게 하여 실격자는 감방으로 호송하였다. 합격자는 그대로 남게 되자, 납작모자가 짤막한 연설을 하였다.
-나의 이름은 시노다 세이지로우다. 이제 너희들은 나와 함께 부산감옥을 떠나 우거진 숲 속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평화와 안녕을 파괴한 범법자인 너희들로서는 큰 행운이며, 이는 황은(황은)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와 함께 보국(보국)으로서 일조함에 매진해야 될 줄 안다. 부산감옥에서의 출발은 일주일 후가 될 것이니 그동안 건강하기 바란다.
시노다의 일본말 연설을 조선인 간수가 통역을 했다.
연설이 끝나자 노무라와 시노다가 먼저 계호실을 떠났다. 합격자들은 그제서야 옷을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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