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예천 회룡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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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1Ds MarkⅡ 16-35mm f16 1/125 ISO 200

회룡포를 아시나요? 우리 땅 중에서 손꼽히는 물돌이 마을입니다. 겹겹이 에워두른 산을 타고 흘러 내려온 내성천이 마을을 한바퀴 휘감아 흘러갑니다. 산과 강이 마을을 품은 '산속의 섬'인 셈입니다. 이런 회룡포의 형상을 두고 초가지붕에 아슬아슬 매달린 호박 같다느니, 한 삽을 떠내면 섬이 되고 다시 한 삽을 퍼 담으면 육지가 된다는 우스개를 하기도 합니다.

회룡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비룡산에 올랐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두툼한 솜이불 같은 운해가 마을을 뒤덮었습니다. 섬처럼 동동 떠있는 고갯마루들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회룡포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여간 서운치 않습니다.

먼 산에서 동이 트자 수탉이 홰를 치며 목청껏 '꼬끼오' 울어댑니다. 건듯 한 줄기 바람이 스칩니다. 여간해선 걷히지 않을 것 같던 구름바다가 기지개를 켜듯 꿈틀거립니다. 바람을 타고 햇살과 어울려 한바탕 춤을 펼치더니, 산을 넘고 하늘로 오르며 덧없이 사라집니다. 모든 게 한순간입니다.

밀려가는 구름 사이로 마침내 회룡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을걷이를 앞둔 벼들이 황금 물결로 일렁입니다. 포르르 논밭을 넘나드는 참새 떼의 날갯짓도 햇살에 번뜩입니다. 강변에 키 큰 미루나무 이파리도 아스라한 빛을 어지러이 토해 놓습니다. 너른 강이 흐르며 밀어올린 백사장의 고운 모래도 금빛으로 반짝입니다. 산과 강뿐만 아니라 그득한 가을햇살도 회룡포를 살포시 품었습니다.

이제 곧 한가위입니다. 고향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앞산이나 뒷산에 올라 고향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 보세요. 마음에 품고 살아온 고향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보시고요, 행여 고향 찾지 못한 그리운 이에게 e-메일로 선물을 해보세요. 요즘은 사진의 쓰임새도 다양해 졌습니다. 낡은 앨범 안에 빛바랜 추억으로 남겨두기보다 마음을 이어주는 선물로 써 보세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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