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 사료집」 펴낸 송기숙교수(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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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18」은 민주화 이정표”/민중 증언으로 엮은 「광주사전」 “독재체제에 대한 경종됐으면”
5·18 광주민중항쟁이 오는 18일로 어느덧 10주기를 맞는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상흔은 아직 아물지 않은 채 10돌을 맞은 오늘도 「빛고을 광주」의 하늘은 하얀 최루탄 가스로 뒤덮이고 화염병 불꽃이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소장인 전남대 송기숙교수(55·국문학)는 항쟁당시 민중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광주 5월 민중항쟁사료전집』을 발간,화제가 되고 있다.
송교수는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내란죄로 몰려 5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까지 치른 항쟁의 산증인이기 때문에 그만큼 이번 전집발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관련법 처리지연에 민자당 출범등 최근 정치권의 일대변혁 영향까지 겹쳐 5·18 10돌을 맞은 광주의 기류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민중항쟁사료집』 발간은 시기적 상황등으로 상당한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데 언제부터 발간 준비를 하셨습니까.
▲광주항쟁 사료들이 멸실되기전에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준비를 한 것이 88년 5월말부터입니다. 그 해 5월23일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가 개소한 후 첫 사업으로 택한 것이지요. 2년여의 준비끝에 빛을 본 것입니다.
­광주문제를 첫 사업대상으로 택한 동기와 이유는 무엇입니까.
▲광주를 포함한 호남은 동학농민혁명을 비롯,광주학생독립운동등 민족민주화운동의 본산이라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특히 5·18민중항쟁은 4·19혁명과 함께 이니라 민주화의 위대한 이정표입니다. 그러나 동학혁명이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물론 4·19혁명조차 당시 주도했거나 참여했던 민중들의 증언이 체계적으로 사료형태로 남겨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광주항쟁의 실상을 당시 가담자나 목격자·피해자들의 생생한 구술등을 통해 사료로 집대성해 항쟁의 성격을 학술적으로 규명하고 민주화운동정신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연구소의 첫 사업으로 정한 것입니다.
­광주항쟁이 갖고있는 시대적·정치적 미묘함 등으로 사료집 발간에 이르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광주항쟁은 독재에 짓눌려 온 민중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 투쟁입니다. 항쟁이전부터 축적된 민중민주운동의 역량이 광주에서 폭발한 셈이죠. 민중운동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때 광주항쟁의 정치적 도덕성이 그런 역사적 맥락속에 있는 것입니다.
증언대상자 선정부터 어려움은 예상외로 많았습니다. 사료의 객관성과 사실성을 기하기 위해 증언자 선정에 중립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증언자중 구술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고 구술의 본질적 약점으로 지적되는 자기행위에 대한 과장·축소·은폐 때문에도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군관계 자료입수가 여의치않아 이번 사료집에 문헌·문건부분은 제외,계속 사업으로 미뤄야했습니다.
­사료집은 어떤 형식이며 주요 내용은.
▲이번에 발간한 사료집은 4×6배판 2천페이지 단행본입니다. 2백자 원고지 2만5천장분의 원고를 수록한거죠. 제1부 항쟁일지와 제2부 증언록으로 꾸며졌습니다. 항쟁일지에는 계엄확대와 전남대생들의 시위가 산발적으로 시작된 80년 5월17일 밤부터 계엄군의 발포,시민군의 전남도청 접수,최후항쟁에 이른 27일 밤까지 10일간의 상황이 연대기식으로 상세하게 수록돼 있습니다.
증언록은 수습대책위와 항쟁지도부·무장조직·부상자·사망자유족·단순가담자·선전활동 등 7개 분야로 나눠 항쟁 당시의 활동이나 목격담,항쟁에 참여한 배경과 동기,그리고 항쟁의 경험이 그후의 생활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등 항쟁전후사까지 구술을 채록해 담았습니다.
­광주항쟁의 실상은 그동안 국회청문회와 신문·잡지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상당부분 알려졌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사료집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색다른 내용이 있는지요.
▲그동안 매스컴에 오르내린 증언자들은 대부분 당시 항쟁에 앞장섰거나 적극 가담하신분,또는 항쟁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억울하게 당한 대표적인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이번 사료집에는 항쟁초기 학생수습위원장으로 활약한 김모씨(당시 전남대생)등 항쟁포기를 주장했던 사람들의 증언도 실었습니다. 이들은 항쟁피해자로 정신적 고통속에 살아오면서도 마치 항쟁의 배반자같은 잘못된 인식때문에 숨어 살다시피한 증인들이죠.
­사료집의 발간의의를 어디에 두십니까.
▲한국의 민중운동사상 역사적 단위사건을 당사자들의 증언 중심으로 사료화 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사료집 발간은 독재체제에 대한 경종은 물론 광주항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시민들의 관심이 사료집 증언부분에 특히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명의 증언이 수록됐습니까.
▲당초 1천5백명을 증언대상자로 선정해 접촉을 시도,그중 대표적인 5백명의 얘기를 채록해 실었습니다. 증언록은 글자 그대로 항쟁 참여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채록,정리한거죠. 구술의 근본적인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을 대상으로 하는등 객관성을 기하려 애썼습니다.
­교수님은 광주항쟁과 관련,중형을 받은 피해당사자이신데 항쟁을 어떻게 생각하며 해결책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항쟁과 나의 직접관련은 80년 5월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동안 수습위원으로 일한 것이 전부이고 소위 강성으로 몰려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년 옥살이끝에 81년 4월3일 형집행 면제로 풀려났고 78년 교육민주화선언사건으로 교단에서 쫓겨난후 7년만인 84년 8월 전남대에 복직됐습니다.
광주항쟁의 비극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에 대한 군부의 무분별한 대처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항쟁을 피로 물들인 발포명령자등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당한 배상을 해야하며 국가차원에서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항쟁정신을 기리는 각종 사업들을 해야할 것입니다. 광주관계법 처리지연과 민자당출범 등은 문제해결을 점차 어렵게 할 소지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광주문제는 몇푼의 돈으로 희석시킬 수 있는 단순한 사건이 결코 아닙니다.
장편 『자라골비가』가 대표작인 중견소설가 송교수는 『광주항쟁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다 그 참혹한 현장충격이 너무 커 차라리 실감이 나지 않아 그만뒀다』면서 『아직도 광주항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광주=임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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