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우연히 화투판에 낀 청년 '꽃'으로 서고 '꽃'으로 망하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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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년작)에 이어 겨우 두 번째 영화지만, 최동훈 감독은 충무로에 확실한 브랜드로 자리를 굳히는 듯싶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복잡다단한 줄거리를 범죄 스릴러로 세공하는 그의 솜씨는 숱한 할리우드 키드가 꿈꿔온 장르적 재미를 한국형으로 소화하는 성취를 보여준다.

주요 인물 역시 이름난 배우들의 본래 특성을 결합한 맞춤형 매력이 돋보인다. 우선 우연히 끼어든 사기도박판에서 큰돈을 날리고 화투판을 전전하게 되는 주인공 고니(조승우). 조승우는 덜 자란 소년 같은 인상에서 출발해 집요한 승부사로 성장하는 다면적인 얼굴을 그려낸다. 그런 고니가 스승으로 삼게 되는 인물이 평경장(백윤식)이다. 화투판에서는 고수 중의 고수이지만 그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백윤식 특유의 분위기가 무게를 싣는다. 도박꾼치고는 어수룩한 편인 고광렬(유해진)은 이 냉혹한 승부 곳곳에서 관객의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이다. 유해진이 구사하는 소탈한 유머는 이내 객석에 감염된다.

특히 빛나는 것은 화투판을 배후에서 설계하는 정마담(김혜수)의 매력이다. 요부(妖婦)와 순진녀, 거친 욕설과 야한 교태, 세련된 의상과 대담한 나신(裸身)을 번갈아 패로 내밀면서 도박이 상징하는 헛되고도 화려한 꿈을 형상화한다. '깜보'(1986년 작)로 데뷔한 이래 스크린 안팎에서 김혜수가 쌓아올린 매력을 한꺼번에 발산하는 듯한 연기다. 막판 대결에 악당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고수 아귀(김윤석)는 이 영화의 새로운 수확. 연극무대 출신으로, 최근'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김윤석은 악역의 매력이 뭔지 실감하게 한다.

2시간19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의 후반에 이르면, 초반 가팔랐던 호흡이 다소 느려진다. 하지만 영화의 화려한 스타일에 일단 빠져들면, 이를 잊어버릴 만하다. 스타일을 설명하는 데는 요긴한 것이 '화투(花鬪)'를 문자 그대로 풀어낸 영어제목(War of Flower.꽃의 전쟁)이다. 대개 추레한 창고나 가건물 따위에서 벌어지는 음습한 도박판이지만, 거기에 뛰어든 인생의 표정을 마치 형형색색의 꽃밭처럼 현란한 촬영기법과 편집술로 엮어낸다. 이 꽃밭에는 손가락을 자르고도, 남은 손가락으로 화투패를 쥐는 중독된 잡초의 인생 역시 등장한다. 도박이 구경으로 족한 세계라는 건, 당연한 전제다.

여러모로 18세 관람가에 합당한 어른용 오락물이다. 허영만.김세영 콤비의 동명 만화가 원작으로, '타짜'는 속임수까지 통달한 노름꾼을 뜻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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