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폭력시위로는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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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일 밤의 도심은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듯 치열했다. 건물과 차량이 불길에 휩싸이고 최루탄과 화염병ㆍ투석전속에서 쫓고 쫓기는 전투복차림의 경찰과 대학생들의 공방이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민자당분쇄와 노정권퇴진」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명분을 따지기에 앞서 가뜩이나 불안한 오늘의 사회ㆍ경제적 위기국면에 대규모 폭력시위가 과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단폭력시위는 그에 상응한 초강경 진압책을 불러오고,그런 폭력의 에스컬레이션속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그 혼돈속에서 다시 민생치안은 구멍을 벌리게 되고,경제는 더욱 바닥으로 가라앉는다는 악순환의 연속을 우리는 수없이 되풀이하지 않았던가.
정치ㆍ경제ㆍ사회 전반에 걸친 오늘의 위기상황을 풀어가고 진정시키는 길은 적어도 폭력에 호소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여러햇동안 반복된 민주화학습에서 충분히 깨달았다.
까부수고 불태워 해결될 일이 아니라 이성에 찬 비판과 냉정한 사태해결방안이 위기국면을 헤쳐나가는 지혜로운 길임을 모두가 체득했기 때문에 자제와 이성의 회복을 다시 대학생들에게 촉구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성적인 방법인가. 민자당의 통합을 폭력으로 분쇄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면 야당과 재야의 연합ㆍ통합을 촉구하는 것이 거여의 독주와 횡포를 견제하는 민주적 방식이다. 물가가 오르고 전ㆍ월세값이 폭등하면서 서민의 살림살이를 위협한다면 그에 상응한 경제정책을 촉구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화염병과 투석으로 올라가는 물가와 집값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대통령 스스로 민자당 통합이후의 내분과 실정을 자인하고 위기국면 해소를 위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제시했다. 자제와 이성으로 과연 그 대책이 지속적인 실천과정을 통해 효과를 얻을 것인지 지켜봐야 할때다. 지켜봐야 할때 일어서고,냉정해야 할때 흥분해버린다면 위기상황은 진정은 커녕 파국으로 줄달음칠 뿐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정부나 민자당은 이번의 대학생시위를 단순히 만성적으로 벌이는 습관적 집단시위라는 안이한 자세로 판단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지난 하반기부터 침체국면으로까지 들어갔던 운동권집회가 왜 민자당통합 분쇄라는 구호아래 새롭게 규합될 수 있었고,비록 소수였지만 거리의 시민들이 호응의 박수를 보냈는지를 깊은 자성의 자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민자당출범의 화려한 창당식 날,도심의 반민자당 시위가 이토록 치열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정부ㆍ여당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를 가리키는 묵시적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민생치안과 서민경제는 뒷전으로 미룬 채 당권과 대권에 눈이 어두워진다면 거리에 나선 대학생에게 호응하는 시민의 숫자가 늘어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민주적 표현방식과 절차에 따라야 함을 대학생들에게 요구하듯 정부ㆍ여당 또한 민자당 통합이 비민주적 권위주의체제로의 회귀가 아닌 구국적 개혁정치를 표방하고 실천하는 민주화의 향도임을 거듭 천명하고 그 실체를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구두선이 아닌 현실정책으로 가시화되어야 한다.
신학기초부터 전대협이 제시한 투쟁일정은 이미 민자당분쇄,광주항쟁 10주년 반미투쟁,8월의 통일염원 투쟁으로 스케줄이 확정 발표되어 있다. 이들이 정치와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든 상관없이 투쟁만을 하겠다는 맹목적 폭력주의를 고수한다면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대중노선 자체도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목표하는 바가 진정 민주화개혁이라면 그것은 민주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폭력은 그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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