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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공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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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자를 처음 그린 이는 당나라 때 오도자(吳道子)다.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은 오도자가 각종 사서의 기록을 종합해 공자상을 그렸다고 적고 있다. '구척의 큰 키에 구부정한 등, 들창코에 잇몸이 드러나는 생김새'. 물론 오도자가 이를 곧이곧대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이마가 튀어나오고 입과 코가 옹색한 '못난이 공자님'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문인화의 시조 오도자는 중국의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현종의 명을 받아 촉(蜀)의 자링(嘉陵)강 300리 경치를 하루 만에 그려낸 신공(神功)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화공들의 수많은 공자상을 제치고 오도자가 그린 행교상(行敎像:제자를 가르치는 모습)이 공자상의 표준이 된 데는 이런 그의 명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덕분에 '못난이 공자님'은 천년 넘게 대성전을 지켰다.

그 못난이 공자상이 요즘 고생이다. '얼짱 공자님' 때문이다. 공자의 75대손으로 공자연구 전문가인 쿵샹린(孔祥林)은 "공자를 신화 속 인물로 만들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못난 얼굴로 왜곡했다"며 "공자는 미남자였으며 공자상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공자가 앞짱구였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사마천은 '사기'에 '공자는 태어날 때 머리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마치 언덕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이름을 구(丘: 언덕)라 지었다'고 적고 있다. '순자' 비상(非相) 편에는 '공자는 키가 크고 얼굴이 몽기(蒙)같다'는 대목이 전한다. 몽기는 귀신 쫓는 탈로, 역병을 물리치거나 장례를 치를 때 쓴다. 나례(儺禮)에서는 눈이 네 개인 탈을 방상씨(方相氏), 눈이 두 개인 것을 몽기라 불렀다. 귀신 쫓는 탈이란 게 대개 우락부락하게 마련이고, 몽기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몽기 얼굴도 머리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다. 공자의 학문을 이은 순자가 공자의 얼굴을 '앞머리가 푹 들어갔으며 우락부락하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몽기탈에 빗댔을 것이란 게 후대의 해석이다.

내일로 공자 탄신 2557주년을 맞는다. 중국 공자기금회는 이를 기념해 '표준 공자상'을 만들었다. '못난이 상' 때와 비교하면 콧구멍이 넓어지고 입이 커졌으며, 눈썹은 짙어지고 수염도 길어졌다. 기금회 측은 "지혜와 온화.자상함이 절로 묻어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얼짱 공자님'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상업화 바람을 타고 불어닥친 얼짱 열풍, 공자님도 비켜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