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인 나환자/한맺힌 타향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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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제때 끌려가 끝내 불치병 걸려/356명 아직 생존… 귀국 엄두 못내
【동경=연합】 일제의 강제징용ㆍ징병 등으로 끌려가 온갖 혹사를 당하다 끝내는 나병까지 걸려 비참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일본땅에 아직도 3백50여명이나 남아있다.
일본 각지에 격리수용된 채 유폐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한국인들은 일제때 광산촌ㆍ탄광촌ㆍ댐공사장ㆍ군수공장 등에 끌려와 중노동에 시달리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로 해방된지 45년이 지나도록 나병감염으로 인해 귀국의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국인들을 마구잡이로 강제 연행하던 1942∼43년 사이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일본 「재일외국인 나병환자동맹」에 따르면 현재 나병으로 격리수용돼 있는 재일한국인들은 모두 3백56명(여자 1백16명)으로 이들은 동경부 동촌산시 인근 전생원 등 일본내 13개 요양소에서 집단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55년 조사당시 6백30명에 달했던 한국인 나병환자들은 그동안 고령으로 인한 자연사등으로 그 숫자가 줄어들었으나 요양소에 수용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할 경우 재일한국인 나환자는 최소한 1천여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지금까지 5백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요양소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여자 11명 등 70명의 한국인들이 수용돼 있는 동경 전생원의 경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강제징용ㆍ징병 등으로 일본에 끌려와 전쟁소모품처럼 혹사당하다 어느날 갑자기 나병 통보를 받고 곧장 이곳으로 강제 수용된 68∼70세 사이의 불쌍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예외없이 자신이 나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물론 살아있다는 것 조차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쓸쓸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77명이 숨져갔으나 모두 동료 한국인들의 손에 화장돼 납골당에 안치됐을 뿐 가족들이 장례에 참석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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