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탄광마을 꼬마시인들 '동심은 반짝반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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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사북초등학교 어린이 64명 시, 임길택 엮음
김환영 그림, 보리, 160쪽, 8500원, 초등학생 전학년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
정선 봉정 분교 어린이 23명 시, 임길택 엮음
정지윤 그림, 보리, 140쪽, 7000원, 초등학생 전학년

20여 년 전, 강원도 정선 탄광마을의 사북 초등학교 아이들은 검댕 묻은 작은 손으로 시를 썼다.

'처음 사북으로 이사 오던 날/나는 검정 나라에 온/기분이었어요' 탄가루로 뒤덮인 동네, 다닥다닥 붙은 집. 아이들은 연탄 차를 '검둥아'라 부르고 시커먼 탄물에 '얼굴도 씻고 손도 씻는다'.

아버지는 광부다. '우리 아버지는 광부로서/탄을 캐신다. 나도 공부를/못하니 광부가 되겠지 하는/생각이 가끔 든다./그러나 아버지께서는/…/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광부의 삶은 자식에게 물려주기엔 지독히 처절하다.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엄마/옷 사 줘/엄마는/너 팔아서 사 줄까?' 월급날이면 빚쟁이에게도 시달린다. 건강도 잃었다. '나는 아버지의 병이 빨리 나아/일을 하게 해 달라고/마음 속으로 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팔을 다쳐서 엄마가/탄광에 대신 나가신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심은 살아 있었다. '나는 사과나무를 심었다/사과가 먹고 싶어 죽겠는데/아직 사과나무는/조그마하다'

정선 봉정 분교는 산골 마을이다. 20년 전 이곳 어린이들은 자연스레 어른들의 농삿일을 도왔다. '어머니는 왼쪽에서 뽑고/나는 오른쪽에서 뽑는다/장난을 하다가 앞을 보면/어머니는 벌써 앞질러 나갔는데/나는 그 자리이다' '한참 심는데/허리가 너무 아파/모를 쥐러 갈 때도/개처럼 기어가서/모를 가지고 와 심었다'

그래도 탄광 마을 아이들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다. 아이들끼리 매미랑 개똥벌레를 잡으러 다니고 토끼랑 꿩을 몰기도 한다. 산골 마을엔 여기저기 놀 거리가 널려 있다. '가파른 고추밭에서 썰매 틀을 만들어 놓고/비료 푸대에 짚을 넣어/내 동생과 신나게 썰매를 탄다'

시험지 앞에서 '그 때 나는 막 죽고 싶은 마음이/몇 번이나 들었다'는 아이가 '우리 어머니도 속이 상하면/몇 번씩 죽는다고 말했다/하지만 지금까지도/못 죽고 살아 있다'고 털어놓는 시에선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아버지, 나중에라도 다시 태어나/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되어/오랫동안 사십시오'라는 시를 읽을 땐 목이 콱 막힌다. 아버지의 죽음 마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이 두 학교 어린이들이 꼬마 시인이 된 건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이다. 교사, 시인이자 동화작가였던 고 임길택(1952~1997) 선생은 탄광 마을, 산골 마을 학교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해 문집까지 엮어냈다. 그 문집 8권에서 골라낸 작품이 새로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다. 먹고 마실 것, 입을 옷과 배울 것도 넘치는 요즘 도시 아이들이 온전히 잃어버린 무언가를 이 시집에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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