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꼬집은 유럽언론/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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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즈음 유럽의 언론들이 전하는 한국경제에 관한 소식은 한결같이 어둡고 우울한 것들뿐이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제2의 일본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경계와 찬사를 쏟아붓던 이곳 언론들이 최근 우리경제를 보는 시각은 「그러면 그렇지,제까짓게 별수 있느냐」는 식이다.
지난 15일자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경제면 중간톱 기사로 한국의 자동자수출 격감소식을 전하면서 「수출지향적 발전모델의 한계」라고 평했다. 생산능력의 확대에만 열을 올렸지 기술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 가격에서 성능위주로 옮아가고 있는 최근의 세계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진단이다.
14일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도 한국의 전자산업을 샌드위치 신세에 비유했다. 말레이시아ㆍ태국ㆍ인도네시아 같은 저가품생산국과 미 일등 고급 고가품 생산국 사이에 끼어 세계시장에서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6일자는 서울증시의 종합주가지수 8백선 붕괴소식을 경제면 주요뉴스로 취급,우리경제를 둘러싼 최근의 비관적 인상을 더욱 실감케 했다.
그러나 이곳 언론들의 우리경제에 대한 비관적 기사와는 상관없이 파리를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씀씀이는 전보다 오히려 몰라보게 대담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백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우리나라 관광객들로 파리시내 유명 백화점이나 고급 상점에는 한국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시내 곳곳의 환전소에서는 1백달러짜리 고액권 뭉치를 보란듯이 프랑스화로 환전한는 「겁없는 한국인」들을 수없이 보게된다. 「외화내빈」이 바로 이런것일까.
『컬러TV 한대를 팔아보겠다고 갖은 고생을 다하는데 아무리 관광객 이라지만 저렇게 물쓰듯 와화를 쓰는걸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게 이곳 주재 한 상사원의 푸념이다. 해외여행 자유화도 좋고 자기돈 갖고 자기가 쓰는것도 다 좋지만 날로 악화되고 있는 우리경제를 생각할때 뭔가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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