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행복을 부르는 요들송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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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에코요들클럽의 연미.원태.진경이.보은이 가족이 ‘연미네 목장’앞 들판에서 요들송 화음을 맞춰보고 있다. [신동연 기자]

"꼬부랑 꼬부랑~, 레잇디오 레잇디오~, 꼬부랑 꼬부랑~ 레잇디오 레잇디오~" "엄마! 요들송을 유행가 부르듯 하면 어떡해요."(폭소) 제 키보다 더 큰 콘트라베이스로 편곡 요들송 '꼬부랑 할머니'의 반주를 하던 황원태(14)군이 어머니 염금숙(40)씨의 '트로트풍 요들'을 참다못해 한마디하자 연습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의 일곱 농촌 가족이 모여 만든 '강화 에코요들 클럽'은 이처럼 항상 활기와 웃음이 넘쳐나는 모임이다.

요들클럽의 '악사' 심연미(14)양이 아코디언으로 맘껏 흥을 돋우면 엄마들은 연신 고개와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목청을 뽐낸다. 예쁜 딸들 황원경(12) 심연수(12) 고보은(11) 한은경(9)양 등도 질세라 "요우 요우" 하며 흥취를 돋운다.

*** 엄마 트로트풍 요들에 폭소

'강화 에코요들 클럽'은 지난해 이맘때 쯤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연미네 목장'을 경영하는 강화 토박이 유은희(39) 씨 등 네명의 엄마들이 한자리에 앉아 무심히 말을 꺼낸 게 발단이 됐다.

"요즘 아이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유행가를 부르고 집에 오면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다"는 말에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들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추억을 되살리며 아이들과 함께 요들송을 불러보면 좋겠다는 제안에 다 같이 의기투합 했다.

유씨.염씨를 비롯해 김혜현(37).김혜숙(38)씨 등 네명의 엄마들은 수소문 끝에 인천에서 요들송을 가르치는 윤길훈 선생님을 모셔왔다. 처음엔 윤씨도 갸우뚱했다. 시골에서 네가족이 함께 배운다니 "잘될까?" 싶었단다.

하지만 윤씨의 기우도 잠깐. 동네 교회를 빌려 매주 목.일요일 오후마다 하는 세시간씩의 연습시간은 즐거움과 화합의 시간이 됐다.

육성과 가성을 반복적으로 교차하면서 발성하는 요들송의 독특한 창법이 처음부터 쉽게 될 리 없었다. 괴상한 소리를 내다 얼굴이 빨개지면 어른 아이 모두 서로 웃고 격려했다.

"제일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수도꼭지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연습했지요." 김혜현씨의 자랑아닌 자랑에 유씨는 "소에게 사료를 주면서도 요들송을 불렀다"고 응수한다.

*** 애들도 TV 안보고 연습

집집마다 간식으로 준비해 온 찐고구마.감자.떡 등을 함께 먹으며 아이들 얘기를 하는 연습 중간의 휴식시간은 또다른 소득을 가져다줬다. 너네 할 것 없이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고 걱정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이웃 사촌이 덤으로 생긴 것.

보은이 아빠 고창섭(40)씨는 "요들송을 함께 부르며 가족간의 화목을 다지고 이웃이 하나가 되는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처음엔 "웬 요들송?"이냐며 한걸음 물러앉아 있던 목사.회사원.자영업.농부 아빠들도 연습시간이면 한자리에 모였다.

말이 없기로 소문난 연미 아빠 심재반(44)씨도 학창시절 만졌던 기타를 슬그머니 들고 나섰다.

그래도 제일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났다. "매일 저녁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요들송이나 악기를 연습하지요." 숟가락 모양의 나무로 만든 악기 우드스푼을 두드리며 목동들의 가락을 익힌다는 한진경(14)군은 "경쾌한 요들송이 너무 재미있고 부모님과 함께 해 신난다"고 말했다. 염씨는 "아이들이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너무 좋다"고 기뻐했다.

요들클럽은 동네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식구가 불어났다. 현재는 모두 일곱가족. 수준급으로 부를 줄 아는 요들송도 40여곡으로 늘어났다. 또다른 다섯 가족이 함께하고 싶어하지만 노래 수준이 맞지 않아 대기상태다.

그 사이 몇차례 '무대'에도 섰다. 엄마들이 찾아다니며 "요들송을 불러주겠다"고 자청한 덕분이다. 유씨가 졸업한 여고 축제, 교회 봉사 연주, 아이들 학예회 찬조 출연, 청소년 동아리 페스티벌 등.

*** "단독공연 해 볼 거에요"

모두들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알프스 전통 옷까지 직접 만들어 입고 나선 요들클럽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고.

"내년 쯤 강화문예회관에서 단독 공연을 해 보는 것이 소원이에요."

이미 인근에서 제법 유명해진 이들이 단독 공연이란 '일'을 내기가 어렵지 않을 성 싶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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