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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 초연의 현장] 베토벤 '합창 교향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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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824년 5월 7일 오후 7시 오스트리아 빈 케른트너토어 궁정 오페라극장(사진)에서 베토벤이 기획을 맡은 공연(당시엔 '아카데미'라고 불렀다)이 열렸다. 공연 포스터는 베토벤을 "스톡홀름.암스테르담 왕립예술과학원 명예회원 겸 빈 명예시민"으로 소개했다.

객석은 일찍부터 붐볐다. 대부분이 자유석이어서 미리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1층 앞쪽의 지정석은 더 비쌌다. 무대가 잘 보이는 박스석은 많게는 10명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6백50석에 입석까지 보태 1천여명이 공연을 즐겼다.

프로그램은 베토벤의'헌당식 서곡' '장엄미사' 중 세 악장, 제 9번 교향곡 '합창'. 모두 초연이었다. 독창을 맡은 소프라노 헨리에트 존탁은 유럽 무대를 휩쓰는 인기 성악가다. 테너 안톤 하이징어(28)는 3년 전부터 테아터 안 데어 빈의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이다.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로시니 오페라를 연주하던 오케스트라.합창단에 빈 음악애호가 협회 소속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가세했다.

순회 독주회를 마치고 돌아온 요제프 뵘(29.빈 음악원 교수)도 제1 바이올린 대열에 합류했다. 현악기 주자만 46명, 관악기 편성도 평소의 두 배였다. 합창단은 오케스트라 앞쪽에 배치됐고 현악기는 무대 왼쪽, 관악기는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휘자'도 무려 세 명이었다. 수석 지휘자는 궁정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미하일 움라우프(43)가 맡았다. 2년 전 '피델리오' 공연에서도 베토벤이 청력 상실로 지휘를 중단하자 지휘봉을 넘겨받았었다. 베토벤도 움라우프 옆에 서있었다. 피아노(p)에선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가 포르테(f)가 나오면 벌떡 일어나 양팔을 공중으로 치켜들었다.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지휘자 콘라딘 크로이처는 무대 맨 앞에서 건반악기 앞에 앉아 움라우프.베토벤보다 앞에 서 있는 네 명의 독창자에게 '큐'를 주었다. 다른 베토벤 콘서트에서 자주 발생했던 연주 중단 사고는 없었다.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화려한 출연진 덕분에 전석 매진이었지만 출연료.대관료를 지불하고 나니 모자랐다. 앙코르 공연에선 극장 지배인 루이 앙트완 뒤포르의 제안으로 프로그램을 바꿨다.'합창교향곡'은 그대로 연주하되 '장엄미사'는 한 악장만 연주하고, 나머지는 로시니 오페라의 아리아로 채우자는 것이다. 5월 27일 오후 12시 30분에 열렸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화창한 날씨 때문에 빈 시민들은 교외로 나들이를 떠나버렸다. 객석의 절반이 텅비었고, 베토벤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베토벤은 애초에 '합창교향곡'을 빈에서 초연하고 싶지 않았다.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위촉을 받기도 했지만 빈 음악계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청중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푹 빠져 교향곡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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