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사로 목숨뺏는 성범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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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대 청소년들의 비행ㆍ범죄가 갈수록 느는 것은 요즘와서 갑작스런 일도,우리만의 사정도 아니다. 산업화ㆍ도시화에 비례해 모든 국가 사회가 예외없이 겪는 현상이며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되어 있다.
그러나 8일 부산에서 고교생도 낀 10대 9인조의 범행은 그동안 10대 청소년들의 온갖 반인륜적 탈선ㆍ비행에 익숙해져 온 시민들에게도 새삼스런 충격을 던진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야간에 술집에서 춤을 추고 나오는 10대 여공 2명을 유인해 1명을 집단 폭행했고 1명은 이를 피해 강에 뛰어들었다가 실종됐다. 그러자 그들은 집단 폭행한 여성마저 증인을 없앤다는 의도로 손발을 묶어 강물에 밀어넣고 달아났다고 한다.
연약한 여성 둘을 남자 9명이 유인해 집단 성폭행한다는 것도 파렴치한 범죄지만 피해자를 손발을 묶어 강물에 밀어넣는 행위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할 말을 잃는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짓이다. 이들에게 있어 피해 여성은 자신들의 성충동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셈이다.
우리는 이같은 범죄가 외형에서는 극히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이라 본다. 그러나 그 내면의 동기와 행태를 살펴보면 언제 어디서나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라 판단한다.
부산 10대들의 범행 외에도 서울에서 귀가길 여고생을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꾀어 성폭행한 20대 공원이 검거되는등 어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는데 이는 범인 자체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사회의 타락한 성윤리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제라도 성범죄,특히 10대 청소년들의 탈선ㆍ비행에 보다 심각한 인식을 갖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대책ㆍ범죄대책의 일환으로 성범죄예방ㆍ단속과 관련한 시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단편적ㆍ대증적인 처방에 그쳐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책은 사회 여러측면과 요소를 유기적으로 종합한 바탕에서 나와야 하며 지속적인 실천이 따라야 한다.
우리사회에는 음란비디오ㆍ만화ㆍ영화 등 성적 자극물이 도처에 널려있고 성인사회의 퇴폐적 향락「산업」은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반면 청소년들이 건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나 기회는 거의 없다시피 되어 있다. 앞으로의 대책은 이런 환경의 개선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경제적 빈곤이 어느정도 해소된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먼 앞날의 만족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는 금욕주의적 가치관을 배우지 못하고 무엇이든 순간적 욕구충족을 지향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TV오락물등 매체들이 그같은 쾌락주의적 청소년문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성인사회가 건전한 가치관과 윤리를 추구하는 노력을 청소년들에게 모범으로 보여주는 길 밖에는 날로 확산되는 쾌락추구와 인명경시 풍조를 개선할 방법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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