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책」장관단명으로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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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과기처장관이 너무나 자주 바뀌어 일관성 있는 과학기술정책을 펴기가 어렵다. 비교적 장수할 것으로 알려졌던 11대 이상희 장관마저 3·17개각 때 1년3개월만에 교체됨으로써 또 한번 과학기술계의 염원을 묵살시켜 버렸다.
지난 67년 과기처 발족이후 23년간 과기처 장관의자에 앉았던 사람은 모두 11명. 4년 이상 재임한 초기의 김기형 장관(초대·현 과학기술진흥재단이사장)과 최형섭 장관(2대·현 포철고문), 그리고 5공 때의 이정오 장관(5대·현 과기원교수)을 제외하면 6년9개월 동안 8명이 갈렸다. 한 사람당 평균 10개월밖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얘기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돼야할 과학기술정책이 뚜렷한 인책사유도 없이 장관이 경질되다보니 정책이 일관성을 잃게 될 수밖에 없어 도대체 정부가 일관성 있는 과학기술정책을 펴나갈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
단명장관의 행진은 6대 김성진 장관(현 한국전산원장)부터 시작된다. 김 장관이 10개월, 7대 전학제 장관(현 과기원교수)이 7개월, 8대 이태섭 장관(현 국회의원)이 10개월, 9대 박긍식 장관(현 동력자원 연 연구위원)이 7개월, 그리고 10대 이 관 장관(현 21세기 위원회 위원장)이 9개월만에 물러났다.
정부출연연구소 P박사는『가장 순수해야할 과기처장관이 정치적 시류에 따라 1년도 안돼 사라져 가야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한다.
과기처의 K국장은『장관이 새로워 업무전반을 파악하는데는 3∼6개월이 걸리며 정책구상과 협의단계를 거쳐 집행하는데 다시 1년은 걸린다』며『너무 오래하는 것도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자칫 횡포를 부리게 되므로 좋지 않지만 2∼3년은 재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새 의자에 앉는 장관마다 시각 차가 있고 또 색깔을 나타내려하기 때문에 새로운 역점사업을 구상하게되고 그러다 보니 전임자의 정책에 방향수정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장관에 따라 연구소의 위상, 국책연구사업, 중소산업기술, 기초과학육성, 과기처직제 등이 흔들려 왔을 뿐 아니라 인사도 난맥상을 보여왔다.
전임 이상희 장관의 경우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테크너 벨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 과학기술외교의 전개, 첨단기술개발계획수립과 착수단계에서 또다시 경질돼 과학기술행정의 특성을 무시한 근시안적 인사라는 여론이 높게 일고있다.
신임 정근모 장관은 전임장관과 호흡을 함께 해온 것이 사실이나 스타일이 판이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기조가 다소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미 전임장관이 개설하려던「기술개발 상담실」이 보류돼 버렸고 그 동안 추진해 오던 몇몇 특별입법도 재검토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잦은 장관경질과 함께 과기처장관이 꼭 이공계 박사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11명이 이공계박사, 1명이 약학박사였다.
과기처장관자리가 민생관련 부처처럼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닌 이상 한번 책임을 맡겼으면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풍토가 이번 정 장관부터라도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바람이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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