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테니스 천재소녀」캐프리어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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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오는 28일로 만14세가 되는 미국 여자테니스의「무서운 아이」제니퍼 캐프리어티는 과연 크리스 에버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80년대 중반부터 서독의 슈테피 그라프 등 유럽세에 무참히 자존심을 밟혀온 미국 테니스 계는 혜성 같은 캐프리어티의 등장에 흥분,
매스컴은 연일 이 소녀를 추적하기에 바쁘다.
미국 테니스 계는 70년대 만해도 남자부는 지미 코너스에 이어 존 매켄로, 여자부는 빌리 진 킹과 크리스 에버트 등 스타들을 내세워 세계무대를 휩쓸었었다. 그러나 남자부는 70년대 중반부터 비외른 보리 등 스웨덴의 바이킹 군단에 눌리기 시작하더니 80년대엔 서독 세에마저 짓밟혀 2등 국가로 전락한 느낌마저 있다.
여자 부는 에버트에 이어「철의 여인」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정상을 유지했으나 나브라틸로바는 체코의 망명선수여서「아메리칸 드림」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캐프리어티의 출현은 호들갑스러운 미국 테니스 팬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지난 5일 프로에 데뷔한 캐프리어티는 이 달에 만두 대회에 출전, 세계랭킹 10위인 체코의 헬레나 수코바를 연파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특히 데뷔무대인 버지니아 슬림스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올라 세계랭킹 3위인 가브리엘라 사바티니(아르헨티나)에게 아깝게 패했으나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
상대선수의 발을 묶어놓는 시속1백14km의 엄청난 서브에 이은 과감한 발리, 어린 선수로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파워는 캐프리어티의 앞날을 마냥 밝게 해 주고 있다.
캐프리어티의 경기를 지켜본 미국 테니스 계 원로 테드 틴링씨(80)는『신인선수의 데뷔가 아니라 주연배우로서의 등장』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천재소녀의 탄생이 결코 우연이나 갑작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훌륭한 코치·매스컴·팬들의 성원 등 3박자가 펼쳐낸 결실인 것이다. 신예스타를 내세워 다시 한번세계를 제패하려는 미국 테니스 계의 끈질긴 집념이라고 할 수 있다.
4세 때부터 에버트의 부친 지미 에버트로부터 지도를 받아온 캐프리어티는 에버트처럼 양손으로 백핸드를 구사하며, 또 킹으로부터는 서브 앤드 발리의 공격테니스를 전수 받았다.
또 에버트의 동생 존 에버트(28)는 캐프리어티의 섭외담당을 맡아 캐프리어티가 광고출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철저한 시간관리를 하고있다.
에버트 가족은 대회기간 중 아예 경기장에서 가까운 자신들의 집을 캐프리어티가 이용하도록 제공했으며 에버트 또한 매일 전화를 걸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매스컴 역시 캐프리어티를 집중조명해 그녀의 주가 올리기에 한창이다.
ABC-TV와 NBC-TV가 경쟁적으로 캐프리어티 특집을 마련했는가 하면 대회 때마다 몰리는 보도진도 예년의 두 배가 넘었다.
팬들의 응원 또한 열화 같아 캐프리어티의 경기 때마다 6천여 관중이 스탠드를 가득 메웠다.
베이스라인에 서서 양손스트로크를 구사하는 캐프리어티는 서브의 폭발력이 에버트를 능가하며 네트플레이에 능해 전문가들로부터「에버트+빌리진 킹」의 장점만을 갖춘「미완의 대기」로 치켜세워지고 있다.
캐프리어티는 3세 때 밀라노에서 아버지 스테파노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왔는데 당시 그녀의 양손에는 테니스 라켓이 들려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스테파노는 혼자 테니스를 연습, 선수생활을 한 독학테니스선수로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딸이 이룩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캐프리어티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자 매스컴·광고업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들볶고 있어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들어버릴까 하는 우려가 높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숙녀복업체인 디아도라사는 캐프리어티에게 모델을 제의해 5년간 3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테니스 라켓생산업체인 프린스사는 3년간 1백만 달러의 조건을 제시하며 경기결과에 따라 별도 2백만 달러의 보너스지급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치 에버트는『경기 일정이 바빠 아직은 모델활동이 벅차다』면서 이 같은 엄청난 제의들을 모두 거절.
한편 미국의 테니스인들은 캐프리어티가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프로에 뛰어들어 기술이 만개 되기 전에 지쳐 도태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21세 이전에 US오픈을 두 번씩이나 제패하면서 미국테니스의 신데렐라가 되었던 트레이시 오스틴이나 19세의 나이에 프랑스 오픈·윔블던 결승에까지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안드레이 예거 등이 일찍 조락한 사실을 예로 들며 캐프리어티의 장래를 조심스럽게 점치고있는 것이다.
이같이 화제가 만발한 가운데 캐프리어티는 오는 5욀 이탈리아 오픈대회에서 진가를 평가받게 된다.
그녀의 파트타임 코치이기도한 왕년의 테니스 여왕 빌리진 킹은『프로데뷔 1년 동안은 아무도 그녀의 주특기·스타일 등에 주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프로 2년 때부터 가 중요하다. 그녀는 그때야 비로소 프로의 세찬 바람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캐프리어티의 우상인 에버트도 올해 랭킹 10위안에 들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에 침묵하고 있다.
미국의 자존심인 캐프리어티가 과연 유럽세가 휩쓰는 여자테니스의 왕관을 빼앗아 올 수 있을지, 미국 테니스 계의 흥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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