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가득 수많은 낙엽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편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성스레 책갈피에 끼우며, 나는 또 밤을 새워 답장을 쓰겠지요. 하지만 날마다 신문을 펼치면 생활고에 지친 어머니가 어린 아이와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카드 빚에 몰린 청춘들이 범죄를 꿈꾸거나 문신 새기듯 유서를 쓰고, 아무 대책도 없이 무서리가 내립니다.
이 아침에 나는 소지를 올리듯 한 잎 한 잎 낙엽을 태웁니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괴로워하거나 노하지 마라'를 되뇌며, 자주 눈빛이 흔들리는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여여하시지요? 고개를 들어 잎 다 떨구고 단식의 겨울 수행을 준비하는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낙엽은 가을의 유서가 아니라 봄의 약정서 같은 것입니다.
이원규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