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 민주노총 완전히 갈라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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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폭행당한 것과 관련해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 1000여 명이 12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경찰이 버스로 민주노총 출입을 막자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버스를 넘어 진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한국노총 로고

민주노총 로고

노동계의 양대 산맥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국노총만이 참여해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이 일괄 타결된 것이 계기가 됐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야합 세력'이라고 비난하자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며 맞받아쳤다. 노동 전문가들은 두 노동단체의 대립이 향후 노동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두 노총의 충돌=양 노총의 이번 갈등은 11일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해 한국노총.재계.정부가 전격 합의하자 민주노총이 발끈하면서 촉발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합의안에 서명하고 나오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뺨을 때리는 등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민주노총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전체 노동자의 기본권을 팔아먹었다"며 한국노총을 거세게 비난했다. "노동법을 30년 후퇴시긴 한국노총에 대한 해체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한국노총도 맞불을 놨다. 12일 한국노총 조합원 1000여 명은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앞으로 몰려가 민주노총 규탄집회를 열었다. 한국노총은 "떼쓰기와 폭력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행사하는 민주노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폭력이 난무하는 노동운동의 행태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 관계 단절로 이어지나=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상대로 규탄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노총은 운동 방식엔 차이가 있었지만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끈끈한 연대를 과시해 왔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위원장은 김대환 노동부 장관 퇴진운동을 함께 벌였다. 조준호 현 위원장이 당선된 뒤에도 한동안 공조는 유지됐다. 민주노총의 집회에 이용득 위원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는 노동자 권익 보호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양 노총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입법을 둘러싸고 입장이 갈린 것이다. 당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최종 수정안을 제시하며 국회와 정부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민주노총 관계자가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이를 방해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그때 생긴 앙금이 이어져 왔는데, 이 위원장 폭행사건이 터지면서 폭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과의 관계 단절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 주도권 싸움? =노동부 관계자는 "한국노총의 이례적인 행보는 로드맵 합의를 계기로 높아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해석했다. 그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들의 과격 투쟁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것도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압박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 노총의 대립이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닌 노동운동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로드맵 합의를 이끌어 낸 한국노총은 실리를 챙기면서 나름대로 주가를 높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최종 협상에서 빠진 데다 협상 과정에서 주장했던 대체근로 금지 등을 전혀 관철하지 못해 최대 피해자가 됐다. 민주노총의 영향력과 교섭력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민주노총의 주력 부대가 철도 등 필수공익사업장인 점을 감안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속단하기는 힘들지만 양 노총이 공조를 파기하고 완전히 갈라서게 되면 노동계의 판도에도 상당한 변화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wolsu@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 한국노총=1946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당시 유일한 노동단체이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45년 결성)가 공산당의 지침에 따라 찬탁운동을 벌이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됐다. 조합원은 78만여 명이다.

◆ 민주노총=90년 1월 결성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발전, 95년 11월 설립됐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불법단체로 규정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공공 부문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회원을 늘리면서 꾸준히 세를 불려 98년 합법단체로 인정받게 된다. 조합원은 80여 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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