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자리서 맴도는 중기 생산기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정부는 최근 과기처·상공부 등의 관계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기술개발 특별대책반을 22개 업종 1백2개사의 중소기업에 파견, 기술진단을 실시한바있다.
그 결과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품질향상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술개발이라고 하면 첨단기술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으나 저변 중소제조업체의 생산기술향상이 이뤄지지 않고는 10년내 선진 7위권 진입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외국기술자들의 국내 중소기업 기술수준 평가에 따르면 미국을 1백으로 했을 때 생산기술67, 설계기술64, 제품개발기술 63 정도에 그치고 있다.

<불량률 10∼15%>
생산기술중에서도 일반가공기술이나 조림기술은 90정도에 이르고 있으나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관련기술, 합성기술, 섬유소재가공기술, 염색가공기술은40∼60에 불과하고 금형, 열처리, 용접, 주물, 도금 등은 30∼50정도.
금형의 가공정밀도의 경우 선진국이 0.003㎜수준이나 우리는 0.01㎜수준이며 열처리와 주물의 불량률은 미·일의 3%에 비해 우리는 10∼15%나 되고 있다.
기술개발 특별대책반의 기술혁신을 위한 애로요인 조사와 최근 과기처가 안산지역에 파견한 중소생산업체 기술애로 진단반의 분석에 따르면 기술인력, 기술정보, 기술개발투자의 빈곤이 주요 애로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술정보의 경우1백2개 조사대상기업의 80·2%가 신기술제품 시장정보와 새로운 과학기술 정보입수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고 98%의 기업이 국내기술정보 전담기관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교과서적인 기술정보는 있으나 생산기술과 관련된 정보는 거의 입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설립된 생산기술 연구원이 HDTV(고화질TV)를 개발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획득하기 힘든 살아있는 현장정보를 제공하는데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덕부진흥의 홍인표 사장은『우리가 올림픽 4위를 달성한 이후 일본의 기술 도입선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고 기술정보제공을 기피하고 있다』며 이의 대책을 호소했다.

<아쉬운 정부지원>
기술인력난도 큰 문제. 앞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대상기업의 89%가 기술인력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김건취 기술개발부장은『과거에는 기술인력이 A사에서 같은 업종의 B사로 옮겨갔으나 지금은 아예 성질이 다른 서비스업종으로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고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대졸 기술자도 사장실 부근에서 맴돌기 때문에 기술개발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P C B(인쇄회로기판)생산 업체인 (주)한일 서키트의 정홍섭 사장은 정부차원의 기술정보알선과 함께 인쇄·도금·금형 등 공정별 기술인력양성을 위한 직업훈련 양성소 같은 기관을 정부가 설치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개발에 대한 의욕부족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남상무씨(지도단자동화실장)는 최근 국내 모 자동차회사에 기술지도차 내한한 일본의 기술자가『한국인들은 겁 낼것 없다. 부장, 과장, 계장을 만날 때 마다 모두 똑같은 질문만 되풀이할 뿐이며 그나마 부장에게 나눠준 자료도 아랫사람에게 전달, 보급 하지 않고 자기 책상서랍에 처박아두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일본 본사에 보낸 일이 있다고 전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남실장은 현장기술지도를 나가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모르고 있으면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기업이나 기술자가 많다고 토로한다.

<끝마무리 미흡>
다품종소량생산을 하는 중소기업이 한번 어렵게 개발해 낸 기술도 계속 생산을 하지 않을 경우 몇 년 안에 까먹고 만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자가 회사를 그만 두거나 기술 내용의 기록·관리가 안 돼 있어 2∼3년 후 다시 생산해야 할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남실장은 또 원가절감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거나 힘들게 국산화한 제품을 사주지 않는 대기업의 횡포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흔히 우리제품은 끝마무리가 소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국산품 구매를 기피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장작업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좋은 재료, 좋은 기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거나 사용을 기피하고 있는 과학기술자와 기업주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도금의 경우 기술적 요인을 기준대로 잘 적용하고 있으나 광택과 수명을 좋게 하는 도금용 첨가제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끝마무리가 나쁘고 와이셔츠 단추구멍 하나도 제대로 매끈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더 좋은 봉제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년째 한국에서 기술지도를 하고 있는 미국인 N 암스트롱씨(기계가공전문가)는 『한국기술자들은 한번 가르쳐 준 생산기법을 그때그때의 현장조건에 맞게 적용, 개선시켜 나가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똑같은 내용을 방문하는 회사마다 반복해야 하는 것은 공통취약기술을 보완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의 부족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발된 기술 사장>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인 D 애크발씨도 『한국제품은 규격기준 범위내에만 들어가면 만족한 제품으로 생각해 버리기 때문에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이 실용화 되지 못하고 있음도 풀어야 할 과제의 하나다.
과기처 유희열 정책기획관은 연구개발 실용화의 문제점으로 ▲엔지니어링 단계의 취약 ▲특정연구개발 성과를 실용화 하는 종합지원체제미비 ▲기술정보의 가공 알선기능 취약 등을 들고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로「한국연구개발 실용화사업 단」(가칭)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기처는 민간의 기술개발 애로과제인 제품 혁신기술, 공정기술, 소재기술, 시스팀기술, 생산기술 등 2백7개 과제와 산기협 민간대책반이 제안한 32개 과제등 모두 2백39개 과제에 대해 전 연구기관을 동원, 집중적으로 해결해 주기로 했다. <신종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