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정 막은 「이념의 벽」(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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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부자ㆍ부부간의 정보다 이데올로기의 벽을 여전히 두터웠다.
북의 역사학자 손영종씨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도쿄(동경)를 찾은 아들 경한씨 등 가족은 18일 저녁 40년만에 한가족이 저녁식사를 하고난뒤 『아버지와 마음놓고 얘기할 수 없는게 안타깝습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신주쿠(신숙)의 한음식점,가족들만이 모여야할 자리에 조총련간부로 보이는 2명이 계속 따라붙어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밖에서는 3∼4명 정도의 건장한 「북쪽계」(조총련)청년들이 시종 바쁘게 움직이며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50년 6.25전쟁의 와중,『잠깐 다녀오겠다』는 말한마디만 남긴채 손씨와 40년간 생이별한 부인 김선순씨도 이날은 몹시 지친 표정이었다. 단둘만이 새겨야할 수많은 사연,남앞에 털어 놓지못할 사정들을 마음놓고 얘기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피로감이었다. 저녁식사만 한채 남편은 다시 북측이 제공한 승용차에 실려 훌쩍 떠나버리고 「남의 가족」들만이 허탈감을 남긴채 숙박지로 향했다.
17일 밤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지고난 다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자회견이 끝난후 1시간 남짓 손영종씨가 묵고 있는 호텔방으로 올라가 가족들만의 대면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도 예의 「감시의 복병」이 지켜보며 걸려오는 전화를 차단했다.
북에서 재혼,2남4녀가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털어놓은 손영종씨의 말속에도 언뜻 「선전의 상투어구」같은 공화국 찬양의 냄새가 풍겼다.
『북에서는 교육비가 전혀 들지않아 6남매가 모두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힘드는 일 아닙니까. 북에서 좋은 집쓰고 근심ㆍ걱정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40년 세월 오직 외아들만을 바라고 살아온 부인 김선순씨에게는 야속하기만한 말이었다.
남북으로 갈린 수많은 이산가족이 모두 자유스럽게 상봉할 날을 생각하면서도 「역사의 비극이 파놓은 골」은 쉽게 아물지 못할 상처로 남을 것 같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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