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이론정립에 ″큰 몫〃|문학평론가 윤재근씨 국내최대『시 논』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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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구문예이론을 여과 없이 들여다가 우리문학을 재단, 문학까지도 종속화 돼 간다는 반성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 시의 이론을 캐들어간 『시논』(도서출판 둥지간)이 최근 출간됐다.
윤재근씨(54·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가 17년의 각고 끝에 펴낸 『시논』은 4×6배판, 8백64족, 총 원고 4천1백장으로 단행본 문학연구서로는 유례 없이 방대한 규모다.
그러나 이『시논』은 그 규모의 방대함보다 일관성을 갖고 우리 시를 창작·감상·비평 할 수 있는 기준을 찾고 있는데 더 뜻이 있다.
시논은 시의 본질을 밝히고 실제비평의 기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때문에 시논은 일관된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기존의 시논들은 서구 시 이론의 화려한 진열에 불과했다. 형식주의·구조주의·수용미학·해석학·신비평·원형비평등 서구이론의 소개에 급급했다. 이러한 생경한 이론들로 우리 시를 비평, 우리 문단은 「비평적 행위나 견해는 있어도 비평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신은 없다」는등「비평의 부재」를 호소해 왔다.
「비평의 부재」는 비평행위를 떠받칠 수 있는 이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총6부로 구성된 이『시논』은 동서양의 시 원류와 전개를 대비, 추적해가면서 한국의 시논을 확립해가고 있다. 제1부 「시논의 원류」에서는 시의 발생 근원을 추적, 인간에 있어서 시란 무엇인가를 밝혔고, 2부「시관의 원류」, 3부「시논과 발전논」, 4부「시논과 사조의 관계」에서는 동서양의 시논 전개과정을 추적했다.
5부「한국시의 유산」에서는 신라의 향가로부터 민족의 정형시로 남아있는 시조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의 전개및 그 전개를 추진시킨 민족정신을 탐구해 들어갔고 6부「시문학과 미적 문제」에서는 시와 언어학·심리학등 제학문과의 관계,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시란 과연 무잇인가를 밝히고 있다. 이 『시논』은 세계문학의 전개과정 속에서 우리 문학의 위치를 찾고있는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시를 비평하면서 그 비평을 떠받치는 우리이론의 부재에 대한 통감이 이 책을 만들게 했다는 윤씨는 집필에만 꼬박 9년이 걸렸다. 독일의 관념주의,영국의 경험주의, 프랑스의 지성주의, 이탈리아의 인도주의, 인도의 정서주의등 나라마다 그 나라를 떠받치는 정신의 기준점이 있는데 근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그 기준점을 찾지 못해 모든 것이 표류해오지 않았느냐는게 윤씨의 설명이다.
그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문예이론들이 거침없이 들어와 유행병처럼 우리의 문단을 점거하다 사라지곤 한 것이 우리의 근·현대문학사라는 것이다.
세계 문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시 이론, 나아가 우리의 정신을 탐구해간 이『시논』은 우리시사의 한 전기로 치부될 것 같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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