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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늘리기 편법'에 발목 잡힌 헌재소장 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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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에서 조순형 민주당 의원이 전효숙 후보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왼쪽은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 오종택 기자

-헌법재판관을 누가 사퇴하라고 했나.(한나라당 김재경 의원)

"청와대 (전해철)민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취지였나.(김 의원)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되는데 임기와 관련해 재판관 사직서가 필요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임기 문제는 편법이 확실하다. 헌재소장에 임명되더라도 그 뒤에 헌법재판관 청문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데….(한나라당 엄호성 의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전에 또 한 번의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했나.(한나라당 주호영 의원)

"(엄 의원 말을) 잘못 들은 것 같다. (이번 청문회가) 헌재소장과 헌재 재판관 청문회를 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6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곤욕을 치렀다. 이날 불거진 전 후보자의 소장 지명에 대한 적법성 논란 때문이다.

◆ 돌아온 조순형이 불붙이다=이 같은 문제 제기는 7.26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민주당 조순형 의원에게서 시작됐다. 법사위에서만 10여 년 활동했던 그는 이날 전 후보자 청문회의 틀을 흔들었다.

청문회가 열리자마자 의사진행 발언권을 얻은 조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제111조 제4항을 들며 "재판관 직을 사퇴해 민간인 신분이 된 전 후보자를 소장에 지명하는 게 적합한지 위원회가 확인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청와대가 헌법재판관의 잔여 임기가 아니라 새로 6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헌재소장을 만들기 위해 전 후보자를 재판관 자리에서 편법으로 사퇴시킨 점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조 의원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헌재소장은 재판관 자격을 겸해야 한다는 것이 법의 정신이며 역대 대통령이 편법을 해왔다고 해서 국회가 따라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 후보자의 재판관 사퇴는 국회의원이 국회의장 되려고 의원직 사퇴한 격"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또 "어떻게 최고 헌법 수호기관의 장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가. 사퇴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인정하라"고 질타했다. 전 후보자가 답변을 하려 하자 그는 말허리를 자르며 "됐다. 오늘 저녁에 심사숙고해 내일 국민이 원하는 대답을 하라"고 다그쳤다.

◆ 청와대, 잘못 인정할지 주목=뒤이어 한나라당이 가세했다. 주호영 의원은 "김용준.윤영철 전임 헌재소장의 경우 국회 청문회를 규정한 인사청문회법이 없을 때라 대통령이 재판관과 소장을 동시에 임명해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라며 "하자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재원 의원은 "청와대가 코드가 잘 맞는 전 후보자의 소장 임기를 6년으로 만들려고 꼼수를 피우다 불법적인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측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헌법학자 세 명에게 자문한 결과 법적인 하자가 크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청문회를 보던 변호사들로부터 '이대로 통과된다면 헌재소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는 전화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헌재소장 임명 속에는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까지 포함돼 있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형식논리에 빠져 저급하고 비열한 짓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증여세 탈루 의혹도=이날 일부 진행된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 등은 "전 후보자가 1996년부터 올 4월까지 장녀의 통장에 3894만원을 입금했고, 장남 통장엔 올 1월까지 2946만원을 넣었다. 그런데도 증여세를 내지 않고 있다 올 7월에야 갑자기 세금을 자진해 납부했다. 헌재소장 자리를 내락받고 문제가 될까봐 정리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전 후보자는 "학자금 마련에 대비해 자녀 명의의 계좌에 돈을 넣어 관리하다 관리가 불편해 2002년 다시 내 계좌로 돌린 것"이라며 "확정적인 증여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정욱.신용호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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