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보다 빵을 선택했다”/니카라과 좌익정권 왜 무너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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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 천7백% 인플레에 시달려/미 외교승리… 중남미정세 급변/정권이양 과정서 군경반발 예상
이번 나카라과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야당연합(UNO)의 비올레타 차모로후보가 당초예상을 뒤엎고 좌익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의 다니엘 오르테가 현대통령(44)을 누르고 승리한 것은 연1천7백%를 넘어서는 고인플레와 8년여간에 걸친 내전으로 「전쟁공포증」에 시달려온 국민들이 「혁명보다는 빵」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약3천여명의 유엔선거감시단과 미주기구(OAS)선거참관단의 관리하에 비교적 「공정하고 자유로운」분위기에서 실시된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차모로후보가 「니카라과의 코라손아키노」의 꿈을 이룬것은 좌익무력혁명이 성공한 나라에서 우익보수정권이 들어서게되는 최초의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고있다.
지난 78년 악명높은 소모사정권에 의해 암살된 남편 페드로 요아킴 차모로의 후광을 등에 업은 차모로여사는 「민주속의 복지」를 내세우며 오르테가의 군사독재를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차모로여사는 오르테가정권이 소모사정권을 축출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민주화와 민정이양이라는 혁명의 기본이념을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특히 오르테가정권의 경제정책실패를 정권퇴진의 공격목표로 삼았다.
사실 니카라과는 오랜 내전과 경제정책실패로 인해 88년에는 3만3천%의 살인적인 인플레를 기록하는등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3백여년간에 걸친 스페인 식민지를 거쳐 1912년부터 20년간 미군정을 받는등 독립적인 경제기반확립이 불가능했던 니카라과는 산디니스타혁명이후 미국의 원조가 중단된데다 경제제재조치마저 당해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특히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우익 콘트라반군과의 내전은 60억달러의 전비지출과 6만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니카라과 경제를 파탄지경에까지 몰아넣었다.
차모로여사는 이같은 국가경제파탄을 오르테가정권의 무능으로 몰아붙이면서 「평화속의 풍요」를 약속,국민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지원을 받는 차모로여사가 당선될 경우 콘트라반군과의 오랜 내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국민적 기대도 큰 몫을 담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차모로여사의 승리는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대중남미정책의 「획기적인 승리」란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그동안 파나마침공등으로 중남미국가에서 민족주의가 크게 고양돼 「제국주의국가」라는 지탄을 받아왔다.
그러나 쿠바와 더불어 미국에 가장 거북한 국가였던 니카라과에 친미정권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미국은 큰 외교적 승리를 거둔 셈이다.
이에 따라 중남미를 자국의 뒷마당 정도로 여겨왔다는 비난을 받아온 미국은 지난 85년이래 계속돼온 대니카라과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는 것을 시발로 본격적인 「중남미장악정책」을 펼쳐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6년단임의 새 니카라과대통령으로 선출된 차모로여사가 직면한 과제는 경제난국타개와 함께 집권세력내의 내홍을 해결하는 것이다.
14개 야당연합으로 구성된 국민야당연합은 공산당부터 극우정당까지의 다양한 노선을 표방해온 정치세력들의 집합체다.
따라서 당초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수 있는 「간판」으로 옹립된 차모로여사가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실권을 장악하면서 연합세력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수렴하는 것이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이와 함께 65억달러의 외채와 고인플레ㆍ고실업률로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경제를 회생시키고 국민의 실질생활을 증진시켜야 한다.
차모로여사가 군경이 모두 산디니스타요원으로 조직돼 있는 니카라과를 성급하게 다룰경우 산디니스타에 의한 「제2의 쿠데타」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산디니스타정권의 강경론자들이 현실적으로 정권을 이양해 줄 수 있어도 실직적인 권력은 양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온만큼 앞으로 남은 정권 이양과정이 반드시 순탄하리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점이 없지않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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