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깜짝쇼?" 코엑스서 플래시몹 이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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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일 저녁 서울 명동 거리는 때아닌 외계인 소동과 시체놀이로 들썩였다. 오후 7시 5분 털모자에 목도리를 맨 한 젊은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외계인이다! 외계인이다"를 외친 것을 신호로 주변에 있던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저기 우주선이 있다""외계인 좀 봐!"하며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던 것. 놀란 시민들이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이들은 다시 7시 7분에 맞춰놓은 듯한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갑자기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웅성대는 군중 사이에서 미동도 않고 누워 있던 이들은 정확히 3분 후 일제히 박수를 치며 벌떡 일어나 사람들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한국에 상륙한 '플래시몹'의 두번째 행사였다. 한달 뒤를 기약했던 세번째 플래시몹 이 18일 오후 8시 서울 강남 코엑스몰 밀레니엄광장 주변에서 열린다. 또 일주일 뒤인 25일 오후 2시15분에는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플래시몹이 열릴 계획이다.

플래시몹이란 e-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매개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모여 벌이는 깜짝쇼, 또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목적은 철저하게 비(非)정치적이다. 단지 즐기는 것, 공공장소에서 혼란을 유발하는 게 목적이다. 지난 6월 초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몇 달 만에 유럽.남미.아시아 등 전세계 40여개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뉴욕에선 대형 백화점의 양탄자 코너에 갑자기 몰려들어 '사랑의 양탄자'를 주문하고 사라졌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선 수백명의 사람들이 아이들 주변에서 원을 만들어 돌았고, 도르트문트에선 수백명이 백화점에 몰려가 모두 바나나를 먹기도 했다.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앞에선 2백여명의 사람들이 심각하게 신문을 펼쳐 읽는 모습을 연출했고, 최근 오스트리아 빈의 한 역에서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한국 내 행사들을 주도하고 있는 '플래시몹 카페'(cafe.daum.net/flashmob) 는 7월 말 문을 열었다. 이 카페에선 회원끼리 개인정보를 묻고 답하지 않는다. 친목카페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간에 신상을 알 필요가 없다는 것. 플래시몹 당일도 5분 이내에 통일된 행동을 한 뒤 그대로 헤어지기 때문에, 회원들간의 교류는 없다. 플래시몹 시작 바로 전까지도 누가 참가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행사 내용은 예정시간 30분 전에 '모버레이터'들을 통해 전해진다. 이번엔 카메라나 라이터가 준비물이란 것 정도 외엔 알려진 게 없다.

18일 플래시몹은 일주일 전부터 2-3일간 공지사항에 '리플'로 이메일 주소를 남기는 식으로 참가신청을 받아 약 5백명이 1차 신청을 마쳤고, 그 후에도 신청자가 쇄도, 2차 신청을 받았다. 모임에 관한 자세한 공지사항은 리플로 e-메일 주소와 함께 신청을 하면 그 주소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을 썼다. 회원으로 위장가입한 보도진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언론에의 노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특히 운영진은 언론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같은 옷을 입고 플래시몹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인터넷 카페 대문엔 "모든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취재요청을 거부한다. 모버레이터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행동을 중단하길 강력히 요구한다"는 큼지막한 글씨의 공고가 걸려있다. 회원들에게 보낸 공지사항에도 언론의 인터뷰엔 무조건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흥어리어리어리" 등의 말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언론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플래시몹이 취소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베를린 등에서는 취재진이 참가자보다 더 많이 몰려들기도 했다. 18일 국내 행사도 각 TV방송사와 신문, 잡지 등에서 취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플래시몹 열성참가자들은 언론이 몹의 신선함, 재미를 잃게 하고 있다는 불만을 쏟고 있다. 플래시몹카페의 회원인 S(23.여성)씨는 "지난번 행사 이후 '플래쉬몹=시체놀이' 혹은 '플래쉬몹=매트릭스 놀이'로 오도한데 대해 반발이 크다"면서 "사실 우린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플몹을 즐긴다. 플몹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그냥 잠시 일탈을 하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혼자 하기는 뻘쭘했던 것을 뭉치면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릴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을 동원해서 심리상태를 분석하려 하니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키는 대로 깜짝쇼를 벌이는 플래시몹이란 것 자체가 회수를 거듭할 수록 싱겁고 재미없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아이디어들을 추구하게 되지만, 그 효과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외국의 경우 '안티몹' 등 새로운 개념의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특정 장소에 특정 시간에 모이는 플래시몹과 반대로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있기를 거부하자는 것.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이런 안티몹을 제안한 네티즌은 "시카고의 중앙역 같은 곳이 갑자기 텅 빈 유령마을처럼 된다고 생각해보라"면서 "따로 '참가자'라고 할 사람들 없이 진행될 수 있으며, 그 이벤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그 곳에 그 시간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참가한 셈이 될 수 있는 획기적인 논퍼포먼스(non-performance art)"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플래시몹'과 동전의 앞뒤에 불과하지 않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인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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