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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서 조정래까지 문인 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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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항일독립운동에 있어서는 보성이 제일이었다."(유희춘 '한일이화' 회장.39회)

"보성의 교육은 한국 문화의 특수한 가치에 기초해 이뤄졌다. 문화계에 무수한 인재를 배출한 것도 이러한 학풍 때문이다."(권영걸 서울대 미대 학장.59회)

보성고등학교의 100년 역사를 꿰뚫는 키워드는 '민족'이다. 1906년 대한제국의 군부대신인 이용익 선생이 건립한 보성고의 건학이념은 '학교를 일으킴으로써 나라를 버틴다'는 뜻의 '興學校以扶國家(흥학교이부국가)'. 보성고는 구한말 '구국 교육'을 위해 설립된 사학 중에서도 그 중심에 있었다.

보성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이 4일 서울 방이동 교정에서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학교 동문들이 권영걸 서울대 미대학장(59회)이 설계한 100주년 기념 조형물 제막식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천도교가 학교를 운영하던 1919년 3.1운동 때는 교주인 손병희 선생과 최린 교장 등이 민족대표 33인으로 나섰고, 장채극.전옥영(10회) 등 보성고 학생들이 시위대의 선두를 이끌었다. 학교 출판사인 보성사에서는 기미독립선언서 3만5000장을 인쇄하기도 했다. 지금도 매년 3월 1일 재학생들이 3.1절 기념식을 여는 것도 이런 선배들의 전통을 기리기 위해서다. 박계동(61회) 한나라당 의원은 "3.1운동을 주도한 학교라는 자부심이 늘 있었다"고 자랑했다. 1940년 문화재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 선생이 학교를 인수한 뒤에도 민족문화에 대한 교육은 이어졌다. 보성고는 유도로도 명성이 높다. 26년 창단된 유도부는 일제시대엔 일본까지 포함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민족적 긍지를 높이기도 했다.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져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원희(90회)씨 등을 배출했다.

89년 혜화동에서 현재의 방이동으로 이전한 보성고는 지금까지 모두 3만6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염상섭.현진건.이상.조정래 등 쟁쟁한 문인들이 보성고 출신이다.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회장, 허정구 삼양통상 창업주 등 재계 인사, 현상호 고려대 초대 총장, 도올 김용옥씨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교우 힘 모아 백주년 기념관 착공

"보성의 10년마다 한 번씩, 열 번의 종이 울립니다."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보성고등학교. 재학생과 동문 대표가 '보성 100년'을 알리는 '보성의 종'을 타종했다. 보성고는 이날 교내에서 재학생과 교사.학부모.동문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민족사학' 보성고는 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이 학교 김갑철 교장은 기념사에서 "보성은 민족문화와 자유민주주의 교육의 산실"이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세계를 품는 보성고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직승(51회) 보성 교우회장은 "보성은 일제의 탄압과 해방 직후 좌우 대립의 혼란 속에서도 뿌리를 지켰다"며 "자랑스러운 100년 역사를 발판으로 도약의 천년을 설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동문인 권영걸 서울대 미대 학장이 설계한 100주년 기념 조형물의 제막식이 열렸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학교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교우회가 건립을 추진해 온 백주년 기념관도 이날 착공식을 열고 공사에 들어갔다. 지상 3층 규모의 기념관 건립에 필요한 50억원은 동문들의 '벽돌 한 장 모으기 운동'을 통해 조성됐다.

행사에 참가한 2학년 임환균군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보성의 전통이 오래됐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모교를 사랑하는 선배들을 보고 더욱 실감했다"고 말했다.

보성고는 올해 4월 함께 개교 100주년을 맞은 휘문.진명.숙명.중동 4개 학교와 불우이웃 돕기 걷기대회를 열었고, 5월 동문 문인들이 참석한 시낭송회, 7월 동문과 전.현직 교사들이 참여한 미술전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기념 행사를 벌여 왔다. 지난달엔 재학생과 교사 17명으로 구성된 '전통문화연구반'이 중국 현지의 고구려문화유적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달 9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동문과 재학생,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참석하고 김세환.신해철 등 동문 가수들이 출연하는 기념행사도 연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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